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보라 Jan 06. 2023

1. 놀이터 규칙의 힘

그네를 탈 때도 규칙이 있다

미국의 공교육은 유치원부터 시작하는데, Kindergarten의 앞자리를 따서 보통 K 학년이라 부른다.


2011년 8월. 미국에 온 지 두 달 만에 abc도 모르는 아들을 미국 공립학교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애들은 금방 적응한다며 호기롭게 보냈지만,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체구도 남보다 한 뼘은 작은 아이가 미국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주변 엄마들은 그러지 말고 사립 어린이집에 보내서 적응시켰다가 내년에 학교에 보내라고 했다. 아들과 면담을 했던 학교 선생님도 내년 입학을 권유했다.(여기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 모든 아이들이 교사와 1:1 면접을 하는데, 이를 통해 아이의 기본 태도, 학습 능력 등을 확인한다.)



형편이 넉넉하다면야 당연히 사립 어린이집에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숨만 쉬어도 코로 달러가 새는 것 같은 팍팍한 유학생 가정이라 우리는 선택지가 없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저렴한 곳도 원비가 월 80만 원이 넘었다. 일반적인 미국 어린이집은 백만 원 이상이었다. 어린이집 보내다 애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니 돈이 모이더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유치원 등교 첫날, 앞으로 어떤 난관이 펼쳐질지 전혀 모르는 아들은 유치원 놀이터를 보자 신나게 뛰어들어갔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물가에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아이를 내놓은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이터 담벼락에 붙어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신병 교육대에 아들을 보내면 이런 심정이려나. 그래도 기도에 대한 응답인지 아들은 학교에 딱 한 분 계시는 ‘한국계 미국인 선생님’ 반에 배정되었다. 미국에서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선생님을 만나다니. 기적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는데 흥미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시소에서 놀던 아이가 그네를 타러 왔는데, 그네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자리가 없으니 다른 걸 타러 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그네 앞에 서자, 누군가가 내려와 그네를 양보했다. 자세히 보니, 그네를 타던 아이들은 자기 앞에 친구가 서면 약속이라도 한 듯 그네를 멈추고 내려왔다. 더 타겠다고 고집부리는 아이가 없었다.


이렇게 순순히 그네를 양보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얘네는 어릴 적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나 싶었지만, 그보다 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규칙대로 움직였다. 그네를 탈 때 지켜야 할 규칙.


“A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 B가 다가와 그네를 타고 싶다며 A 앞에 선다, 그러면 A는 그때부터 딱 왕복 20회만 탈 수 있다. 더 타고 싶어도 20번을 왔다 갔다 했으면 무조건 B에게 그네를 넘겨야 한다.”


학교 안내문에 나와 있는 ‘그네 타는 규칙’이다.


그네 타는 규칙이 횟수까지 안내돼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규칙을 존중하고 지키는 아이들의 태도가 더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미국 놀이터 규칙이 무척 흥미로웠다. 여기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규칙이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왕복 20회. 유치원 수준의 아이라면 그네 앞에서 숫자를 세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1부터 20까지는 알고 있다. 모르더라도 그네 몇 번만 타면 금방 배운다.


단순히 ‘그네를 타다가 친구가 오면 양보하세요.’라고 지도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아이들은 각자의 가치관대로 움직일 것이다. 친구가 오면 즉시 그네에서 내려오는 아이, 그만 타라고 소리 지를 때까지 타는 아이, 선생님이 와서 끌어내려야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아이. 타고 있는 친구도 기다리는 친구도 화가 난다. 모호한 기준은 갈등을 일으킨다.



모든 반이 똑같은 규칙을 준수한다. (같은 학년 같은 규칙)


1반은 왕복 20회, 2반은 50회, 3반은 힘센 놈이 임자. 이렇게 반마다 기준이 다르지 않다. 이곳 K 학년은 총 4개 반인데, 4개 반 모두 놀이터 규칙이 같았다. 교사는 ‘학년에서 정해진 원칙’대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모든 반이 사용하는 놀이터에서 규칙이 반마다 다르면 아이들은 헷갈린다. 어느 반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른 반은 맘대로 타는데, 왜 우리 반만 횟수를 세냐는 불평이 나온다. 그네 주변은 싸움판이 되고 규칙은 힘을 잃는다. 그 자리는 기가 세거나 고집이 센 아이가 차지한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였다. 계단이나 복도에서 넘어질 수 있으므로 앞, 뒤가 막힌 실내화만 신으라는 규칙을 안내했다. 회의까지 거쳐서 정한, 전교생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이었다. 그럼에도 몇몇 아이들은 앞뒤가 뻥 뚫린 슬리퍼를 끌고 다녔다. 신발을 지적하자 아이가 볼멘소리를 냈다.


“1반 아이들은 슬리퍼 신어도 상관없는데, 왜 우리 반만 지켜야 돼요?”


애들이 뭘 신어도 상관하지 않는 너그러운 1반 선생님 덕분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학교 규칙이라고 말해봤자 아이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선생님 되게 깐깐하네 하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학교에도 규칙은 있다. 학급 회의를 통해, 전교 어린이 회의를 통해, 나아가 학교 운영위원회를 통해. 많은 시간 동안 토의해서 정한 소중한 규칙들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규칙을 지키지 않을까. 왜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될까. 이건 교사, 학생, 학부모.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미국 학교 규칙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들어가기에 앞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