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위력
석 달 만에 주치의 선생님을 만난다. 오늘은 피검사 외에 특별한 검사는 없다. 병원에 도착하니 오전 7:15분. 채혈실은 오전 7시부터 시작하는데 한 손에 대기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벌써 입구가 북적인다. 이미 나보다 부지런한 32명이 대기 중이다. 인파 속에서 7069번 고객님을 찾는 소리가 들린다. 얼핏 보면 맛집 분위기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채혈을 막 끝낸 여자분이 솜으로 팔을 문지르며 내 앞을 지나간다.
여자: 아윽...
남자: 왜 그래?
여자: 아프니까 그러지!!!!! (버럭 샤우팅)
남자: ?????
딱 봐도 부부다. 남편분은 '왜 그래' 한 마디 했다가 벼락을 맞았다. 아내분 뭐 땜에 그리 화나셨을까. 시선을 휴대폰 화면에 둔 채 큭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남의 집 싸움 구경은 왜 이리 재밌는 겨.
차례가 되어 채혈실에 들어갔다. 오늘도 다른 환자와 다르게 채혈실 구석 침대에 앉아 찜질팩을 대고 간호사님을 기다렸다.(따뜻하면 혈관이 잘 보임) 유방암 수술 이후, 정확히는 양쪽 겨드랑이 감시 림프절을 뗀 이후로 '팔' 대신 '발'이 바늘 찔리는 데 협조하고 있다. 언제쯤 다시 팔에다 채혈할 수 있을까.
피를 뽑고 나와 병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진료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 커피를 마실까 하다 공복임을 감안, 곡물 라테를 시켰다.(집에선 눈뜨자마다 빈속에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으면서 병원 올 때만 각성하기)
오전 8시 30분, 라테를 들고 놀이터에 갔다. 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시소를 가로지르며 잰걸음으로 지나다녔다. 이 시간은 나도 정신없이 출근하던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텅 빈 놀이터 흔들의자에 앉아 라떼나 마시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병원으로 돌아갈까? 그건 싫다.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충분히 길고 지겨운데 나머지 시간까지 병원에 틀어박혀 있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오늘은 밖에 있기 너무 좋은 날씨다. 흐리고 선선. 섭씨 23도. 바람 없음.
8시 55분쯤 병원에 들어갔다. 진료 시간은 9시 30분이다. 일찍 가서 접수해도 늘 예약 시간보다 늦게 진료를 받았는데 오늘은 웬일로 9시 5분에 이름을 불렀다.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어요? 타목시펜 복용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프고 몸이 춥고 덥고 해요. 자다가 자주 깨고요."
메모장에 적어놨던 부작용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약간 뻐근하고요, 약간 화끈거리고요, 좀 화나고, 좀 잠이 안 와요..." 증상을 말할 때마다 '약간, 좀'이 세트로 나온다. 내 부작용은 아직 견딜만하다고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의사 선생님은 유방암 환자들이 흔히 겪는 타목시펜 부작용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여전히 생리를 한다고 하자, '타목시펜은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 이지 생리를 끊기게 하는 약이 아니라서 생리가 나오는 건 정상'이라고 했다. 다만 불규칙적이고 양이 줄 수 있다고.
추가로 정기적인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타목 시펜은 유방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자궁 내막암을 '유발'하는 기가 막힌 약이기 때문에 부인과 검진이 필수다. 그렇지 않아도 타목시펜 처음 받을 때 산부인과 검진에 대한 언급이 없으셔서 궁금했었는데. 나는 이미 암 센터 폐경 클리닉에서 검사받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피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 간 수치 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수술받은 부위는 로션 잘 발라주고 마사지해 줄 것. 특히 방사선 쬐인 곳 신경 쓰기. 찬바람 불면 통증이 심해져서 재발인 줄 알고 놀래서 뛰어오는 환자가 있다고 한다.
"이제 6개월 후에 만날 거예요. 그리고 치료 다 끝났으니 '암생존자 통합실' 연결해 드릴게요."
정식 명칭은 암생존자 통합지지 실. 암 치료가 끝난 환우들을 위해 각종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상담실에 들러 간단한 설문을 끝내고 프로그램을 안내받았다. 암 수술 후 운동법, 식사와 영양관리, 마음 다스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수면 위생 교육도 있었다. 온몸이 화악 더워지면서 새벽에 깨는 날이 많았던 터라 수면 관련 프로그램과 심리 상담 수업을 예약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직접 만나서 상담받고 운동도 배웠다던데, 지금은 비대면으로만 진행된다는 게 아쉬웠다.
달력, 칫솔 세트, 암 환자 운동법 포스터 등이 담긴 쇼핑백을 받았다.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병원 밖을 나왔을 때, 나는 움츠러들었다. [암생존자 통합 지지실]이라는 글자가 박힌 쇼핑백이 스스로를 암 환자라고 광고하는 전광판 같았다. 암 치료 과정을 끝내고 건강히 살아 돌아온, '암생존자'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부끄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쇼핑백을 최대한 몸에 바짝 붙였다.
암 센터만 갔다 오면 기운이 쭉 빠진다. 아침부터 공복에 피까지 뽑았더니 오늘은 더 피곤해서 얼른 집에 가 눕고 싶었다.
지하철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르신 한 분이 오피스텔 홍포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냥 지나쳐 가고 싶었지만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엄마 또래의 어른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전단지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오늘의 먹잇감을 찾은 전단지 여사님은 기다렸다는 듯 덥석 내 팔을 붙들었다. 먹잇감이 도망가지 않도록 꽉 움켜쥔 양손에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인 지금 이게 무슨 일. 힘은 또 왜케 세신 거야. 아, 내가 지금 기운이 없구나...
"저기, 길 건너가면 모델 하우스가 있는데 거기 5분만 들렀다 가면 안 될까? 가서 명함만 받으면 되는데."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사님은 늙은이 실적이라며 한 번만 들렸다가라고 끈덕지게 애원했다. 죄송하다고 안된다고 최대한 난처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어봐야 소용없었다. 아... 신랑 말대로 난 호구가 될 상인가. 함께 전단지 받은 사람들 중 왜 하필 나한테만!
나는 지금 모델 하우스에서 낯선 사람과 말할 에너지가 1도 없다. 게다가 집에 도착하려면 언덕을 넘고 15분은 더 걸어야 한다.(전원적인 곳에 사는 단점) 여사님은 먹이를 놓아 줄 생각이 없다. 이를 어쩐다...
전에도 홍보 전단지는 여러 번 받아 봤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붙잡고 호소하는 분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다. 고백 타임이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좀 아파요.... 암이에요."
나는 방금 전까지 감추려고 급급했던 쇼핑백을 여사님 눈 높이에 맞춰서 들이댔다. 손가락으로 '암센터통합지지실'이라는 글자를 '정확히' 가리키며. 표정은 아련하게. 느닷없는 암밍아웃이었다.
"어머,어머,어머!!! 정말 죄송해요. 세상에!!!!"
'암생존자'라고 똬악! 적힌 글자를 본 여사님은 백만 볼트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떨어져 나갔다. 방금 전까지 '오늘의 호구'를 붙들고 실적의 압박을 토해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미안하단 말만 연발하시더니 황급히 자리를 뜨셨다.
사라지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내 병의 위력'을 실감했다. 맞아. 암이란 이런 거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병. 나도 예전엔 아픈 사람들에게 '그래도 암 아닌 게 어디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잖아. 이젠 금기어가 되어버렸지만.... 기운 빠진 어깨를 쭉 펴고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심리 상담 프로그램은 9월부터 진행된다. 상담사 한 분과 암 환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암 환자로 지내다 보니 가족이나 지인 외에 마음을 털어놓을, 내 얘기를 객관적으로 듣고 판단해 줄 '타인'이 필요했다.
타인만이 치료 가능한 상처가 있다. 나와 친밀히 연결돼 있는 사람들은 그 상처를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기 때문에 털어놓기 어렵다. 그들은 내가 아무리 살짝 베였다고 말해도 칼에 찔리는 고통을 느낀다. 사랑하니까 더 많이 더 크게 괴로워한다. 남편이나 엄마랑 얘기하다 가끔씩 머리가 멈칫하는 이유다. 그래서 타인이 필요하다.
비대면 수업이라 아쉽긴 해도 줌(ZOOM)을 통해 전문 상담사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니. 게다가 무료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해 준 국립 암센터에게 감사를.(전했더니 '다 세금입니다.'라며 미소 지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