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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n 22. 2022

조이에게

너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


조이야, 안녕.

네가 내 뱃속에 있고, 내가 너를 품고 있으니 나는 네 엄마란다. 아직 '엄마'라는 호칭이 어색한데 말이야, 그래도 우리의 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나는 이 이름에 적응하는 중이야.


오늘은 네 아빠가 야근이라 저녁 시간을 혼자 보내고 있단다(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꾸나). 오늘 저녁 설거지를 하기 전, 음식물처리기를 비우려고 건조통을 꺼내서 부엌으로 가져왔어. 건조되어 분쇄된 가루를 따로 모아두는 통이 있거든. 여느 때와 같이 그 통에 한 줌의 가루를 붓고 있었는데 말이야,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소량의 가루가 쏟아지고 말았어. 결국 식탁 아래 바닥 한 구석이 가루 범벅이 되었더랬지.


그런데 말이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 뭐야.

'만약에 조이가 나중에 이렇게 바닥에 무언가를 쏟는다면, 과연 나는 조이에게 뭐라고 말할까?'


사실, 바닥을 치우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괜찮아'라고 말했거든.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물어봤어. '지금 이게 왜 괜찮은 걸까?'


바닥에 가루 좀 쏟은 건 정말 별 일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런데 이런 유형의 일들을 나 스스로 소화하지 못했던 나날도 분명히 있었거든. 그래서 알았어, 지금 내 마음이 굉장히 여유롭다는 걸.


그렇다면 훗날 육아로 잔뜩 지친 내 눈앞에서 조이 네가 무언가를 잔뜩 흘려놓는 그날, 내 마음에 여유가 한 톨도 안 남아있을 그 순간에도 내가 너에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웬만하면 잘 넘어가려고 하겠지만, 진짜 힘든 날이면 "안 괜찮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도 네 앞에선 얼굴을 무섭게 찡그리지 않겠노라고 미리 다짐해볼게.


이 이야기를 오늘 너에게 하는 건 엄마인 내가 충분히 용납해줘야 하는 일들로 조이 너에게 각박하게 굴지 않았으면 해서야. 그리고 혹시라도 나중에 네가 이 글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나 아빠가 의도치 않게 너에게 실수하는 일이 생기면 부디 우리를 용납해주기를 부탁한다.


늘 용납받고 싶었던 내가 어느덧 나이를 먹고 내 몸속에 한 생명을 품었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그냥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깊어지는 듯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마음으로 늘 너를 품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너를 품은 이 열 달의 시간부터 네가 이 땅에 발을 내딛는 날, 네가 10살, 20살, 지금의 내 나이를 넘어 우리가 이 땅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그날까지.


내 마음에 늘 용납의 공간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마음을 넓고 깊게 만들어가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엄마가.


오늘이 10주 0일차라 조금 더 자랐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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