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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Nov 15. 2022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인데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를 읽으며 (2)


남편은 나보다 '이성적으로 사고'를 하는 편이고, 나는 남편보다 '감성적으로 사고'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편은 합리와 효율에 초점을 맞춰 선택을 할 때가 많고, 나는 직관적으로 혹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본 후 선택할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확히 '흑백'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생각에 늘 귀를 기울이고, 때론 서로의 생각에 기대어 자신을 물들이기도 한다.


전혀 다른 삶을 살던 그와 내가 연인에서 부부가 되자 우리는 한 몸이 되었다. 가지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있지만 사랑에 뿌리내린 한 나무가 된 셈이랄까. 물론 이것은 부부의 신비한 연합과 결혼생활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분명 하나이지만 또 분명히 두 인격체인 남편과 나는 오늘도 같이, 그리고 또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전업주부로 사는 나는 '집안일 =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외벌이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내린 합리적인 선택이고 결정이지만, 나는 남편의 애씀에 늘 고맙다. 남편이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고로 나는 안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 그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포근하게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남편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은 확실히 남겨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집안일에만 매달려 있지 않는다. 결혼생활 초기에는 흘러넘치는 듯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집안일과 내가 하고픈 일들이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뒤죽박죽, 엎치락뒤치락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나름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하며, 내가 나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혼자만의 시간도 잘 누리고 있다.


남편도 '집안일 =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퇴근 후 귀가했을 때 자신의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아내가 다 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은 내가 집안일의 대부분을 처리하지만, 그는 나의 애씀에 늘 고마워한다. 그리고 임신 30주로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는 아내를 헤아리며 그는 요즘 나의 집안일을 만류한다. 하루 종일 치열하게 일을 하고 돌아와서 말이다. 거기에다가 출산 이후 집안일을 위한 자신만의 동선까지 구상하고 있다.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를 쓴 저자 홋타 슈고 교수(메이지 대학교 교수이자 언어학 박사)'본능과 사고'를 다룬 장에서 "사고를 중시하면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익을 독점하려는 성향의 사람'과 '이익을 나누려는 사람(협력적인 사람)', 이 두 부류의 뇌의 차이를 밝혀낸 일본 다마가와대의 사카가미 미사미치 연구진의 실험*을 인용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이익을 선택할 것인지, 상대방과 이익을 나눌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후 피실험자들의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을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인간의 뇌에는 이성을 담당하는 '생각의 뇌(대뇌 신피질의 일부인 배외측 전두전야)'와 감정과 욕구 등을 담당하는 '본능의 뇌(대뇌변연계의 일부인 편도체)'라는 영역이 있다. 이 두 영역을 관찰 및 비교한 실험에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할 때 본능의 뇌보다 '생각의 뇌'가 강하게 활성화되었다. 또한 협력적인 사람은 이익을 나누기 위한 선택을 할 때 생각의 뇌보다 '본능의 뇌'가 강하게 활성화되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하고, 협력적인 사람은 '본능을 따라, 직관에 맡겨 선택'한다는 것이다.


홋타 슈고 교수는 득실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당연히 손해나 위험에 과민하게 생각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뇌의 피로를 느끼고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열심히 생각하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사고와 본능이라는 이 두 가지의 균형감각이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준다"는 그의 한마디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네 인생 속에서 '생각해야 할 것''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하여 삶의 균형을 유지하라 격려처럼 들렸다.




우리 부부는 두 달 뒤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당신보다 더 힘들다'를 외치며 집안일을 서로에게 미룰지도 모른다. 그 처절한 외침이 이 집안을 채우는 때는 '이익을 나누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계산하는 이성'에 밀리는 순간일 것이다. 몸이 피곤하고 지칠 땐 자동으로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편할까'를 계산하는 게 사람이라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자신의 이익과 합리를 따지던 우리를 비효율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론 앞서는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혀 그 어떤 때보다도 우리를 이성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이 내 마음에 담아두는 감정을 나타내는 명사였다가 점점 상대를 위한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되고 있는 이때를 기억하자. 내가 그를 챙길 때, 그도 나를 챙기고 있었고 내가 그를 위해 헌신할 때, 그도 나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나를, 그가 그 자신을 전적으로 챙기지 않아도 구멍이 나지 않는 신비를 기억하자.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신비를.


폭풍 같을 육아의 시기를 앞두고 간절히 바란다. 나의 유익을 먼저 구하지 않고, 내가 그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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