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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Apr 24. 2023

우리의 기념일

그날은 '나의 옆자리엔 당신이 아닌 그 누구도 설 수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날이었다. 그러므로 그날은 (결혼을 꿈꿀 수 있는 대략의 나이부터 계산해 보자면) 20여 년간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모든 다른 가능성들이 모조리 상실되어 버린 날이었다. 오로지 단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겠노라 약속했던 그날은 2021년 4월 24일, 우리의 결혼식날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두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나는 남편을 쏙 빼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 했고, 오늘의 나는 정말 남편을 쏙 빼닮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 결혼기념일을 시작으로(?) 내일은 우리 아가의 100일, 내일모레는 남편의 생일이다. 이런 겹경사가!


하지만 아쉽게도 남편과 나는 멀리 떨어져 우리의 기념일을 맞이했다. 3월 말부터 남편은 이수해야 하는 교육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에 내려가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우리는 7월 초까지 주말부부로 살아야만 한다.)


기념일이라고 특별한 이벤트를 할 수도 없어 오늘은 가벼운 전화 통화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괜찮다. 기념일은 기념하는 날이고, 나는 충분히 우리의 결혼을 기념했으니까 말이다.


"아윤아, 이건 엄마 아빠의 결혼사진이야."


생후 99일 된 딸을 안고 거실과 서재를 돌아다니며 벽에 걸려 있는 우리 부부의 결혼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여느 때보다 조금 더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때 그 시절의 우리를 추억하고 사진 속 남편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아윤아, 엄마는 아빠가 보고 싶어."


남편을 쏙 빼닮은 딸의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코를 맞대어 보기도 하고 이마에 뽀뽀도 해주며 보냈던 오늘. 작년과 또 다른 일상을 보내며 내년 4월 24일은 어떨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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