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풍이 만든 밥상, 풀치조림

소소행(小笑幸), 직장인의 밥상

by 규아

칼처럼 길고 번뜩인다고 하여 갈치, 풀잎처럼 작고 가늘다고 하여 풀치. 이름을 처음 지어준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이름이다. 풀치는 갈치의 새끼다. 아직 살이 차오르지 않아 부드럽고, 뼈가 여려 통째로 씹어먹을 수 있다.


여름이 지나고, 금어기가 풀리면 군산의 재래시장은 풀치로 가득 찬다. 살이 얇아 구이로는 부족하지만, 해풍에 말려 두었다가 조려 먹으면 그만이다. 풀치는 바다의 바람 속에서 꼬득해지고, 짭조름한 간장빛 속에서 제맛을 찾는다.


군산의 해풍은 바다를 말리고, 바다는 밥상을 만든다. 박대의 촉촉한 살, 나나스끼의 짭조름한 향, 그리고 풀치조림의 달큰한 간장 냄새까지. 외지 사람들에겐 낯설지 몰라도, 군산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집밥의 풍경이다.


웬만한 생선탕집에 가면 풀치조림 한 접시가 따라 나온다. 나이드신 주인장이 운영하는 밥집에서도, 하얀 밥 위에 얹힌 풀치 한 토막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군산의 밥상은 그렇게 오래된 습관처럼 바다를 품고 있다.


바짝 말린 풀치는 팬 위에서 노릇노릇 볶이다가 간장, 조청, 마늘, 통깨와 만나며 달짝지근하게 변한다. 냄새가 퍼지면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짠내와 단맛 사이, 바다의 냄새가 밥상 위에 앉는다.


뼈째 오독오독 씹히는 그 맛은 묘하게도 사람의 인생을 닮았다. 해풍에 말리며 단단해지고, 조림 속에서 제맛을 찾아가는 생선. 풀치는 작지만,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는다.




풀치의 자리


해풍에 닳아가며,

나는 단단해졌다.


짜디짠 맛 속에도 단맛이 있고,

풀처럼 작은 몸에도 깊은 시간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고, 불에 익어가며,

제 안의 맛을 채워가는 버팀의 시간


오늘도, 제 자리를 잃지 않으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묵묵히 흔들리고 있다.




오늘의 밥상

풀치밥상.jpg

군산의 유명한 반지회덮밥집에서 아나고탕을 먹는다. 김이 오르는 탕 옆에 어김없이 놓여있는 풀치조림. 윤기 어린 풀치의 짠맛과 단맛 사이에 바다의 시간이 녹아 있다. 동료와 함께 먹는 밥 한술이 이른 겨울의 추위를 서서히 풀어준다

keyword
규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