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https://youtu.be/VHpDPr423nA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는 걸 보니 곧 눈이 오려나보다.
일과 학업에 정신없이 허덕이며 지나 보낸 대학 마지막 학기가 끝난 지도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처음 회사에 입사해 들어갔던 팀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살며 처음 겪는 수술을 마친 뒤라 부장님께서는 마지막에 술도 못 사준다며 건네셨던 답지 않게 예쁜 봉투에는
금방 찾은 듯 빳빳한 지폐가 몇 장 담겨 있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의 냄새가 아직 잊히지도 않았을 만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정중히 담긴 마음이 어떤 형태가 되자
내게 드는 마음이 후련함인지, 아련한 그리움인지, 지난 시간에 대한 회고인지 몰라 머쓱히 웃음만 지어 보였다.
바로 다음 날이 대학 졸업식이었다.
하나의 떠남을 충분히 곱씹기도 전에, 졸업이라는 또 다른 작별을 준비해야 했다.
대학에 가면 뭐든 다 행복하리라, 꽤 긴 시간을 희망차게 보냈었던 것 같다.
막상 지상에 나온 매미처럼 목놓아 울 수 있었던 시간은 덧없이 짧았다.
마지막 시험과, 마지막 등교의 후련함 그 끝에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졸업식을 꼭 가야 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에 망설여지더라도 가보라 힘을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걸 보며
그래 이게 남았다,
나보다 내 졸업을 더 생각해주는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을 보며
그래 이게 남았다, 속으로 되뇌었다.
짧게나마 캠퍼스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래도 몇 년간 애증이 담긴 가장 평범한 공간들에 웃음도 눈물도 담겨있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던 날부터 마지막 졸업을 하는 날까지, 곳곳에 발자국이 닿아있는 그곳에서 내 인생 가장 뜨거웠던 계절이 지남을 느끼며
함께해줬던 모두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며칠이 지난 뒤였을까,
내리던 눈은 기대했던 포근함 보다는 질척임에 가까운 눈이었다.
주변의 바람에 나부끼며 하강하는 것도 상승하는 것도 아닌 것들이,
채 땅에 닿지도 못한 채 흩날리는 것을 보며
내 있는 곳이 저쯤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짧게나마 가졌던 휴식이 지나,
새 팀에 발령이 나 제대로 적응할 틈도 없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니 또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또다시 어떻게든 끝은 찾아오고, 또 다른 시작과 함께 겨울이 되었다. 이는 내 생일이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친구들이 다 돈을 벌더니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던 녀석들이 뭐가 필요하냐 묻는다.
새로운 인연과 멀어지는 인연의 비율이 많이 기울어 버린 지금에 사실 어떤 선물인 지보다 마음이 담긴 길지 않은 그 몇 마디 말과 서로 나누는 의미 없는 근황들에 감사했다.
장난스레 나는 우정이 필요하다 말했더니 지랄하지 말라는 욕이, 역시 그대로구나 하는 안도감에 웃음 지었다.
나는 겨울이 좋다.
주변의 것들과 인사하는 이 입김 나는 계절이 좋다.
가장 추운 이 계절이 내게는 역설적으로 더 따뜻하다.
그리고 또 겨울이 온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걸 보니 곧 눈도 오려나 보다.
올해 첫눈은 작년보다 더 포근했으면, 모두에게 더 포근한 눈이 되었으면.
짓밟혀 더러워지더라도 따뜻한 서로의 온기로 기억될 나날들로 덮여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