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집을 하다
작년, 2022년 12월 26일
경기도의 어느 시골에서 한식뷔페집을 인수받게 되었다.
작가로 살다가 식당 주인이 되는 일이 내게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외도를 하는 짓인지라 설렘과 불안감을 가지고 오픈했다.
일반 식당이 아니라 한식 뷔페식당은 꽤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중 우리 삼 남매에게 오묘한 기분이 들게 한, 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작고 아담한 경차를 주차하고 혼자 식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여자 혼자 한식 뷔페에 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나와 같은 과의 사람인가?
긴 머리에 키도 꽤 컸고 단아한 외모의 그녀는 계산을 하고 자리를 정하고 나서
꽤 바삐 움직였다.
그 당시는 주방을 책임져줄 동생의 부재로 나 혼자 주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던지라
나는 그녀의 존재를 몰랐고, 그녀가 가고 난 뒤 오빠는 굉장히 화를 냈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은어가 있다.
"빌런이 왔어!"
이 말은 진상손님을 뜻하는 말이었다.
잔뜩 격양된 오빠의 말에 자초지경을 들은 나는 놀랐다.
그녀는 혼자서 넓은 접시 세 개와 국접시 네 개, 즉 일곱 개의 접시를 한 테이블 가득 늘어놓고
40분이 넘게 밥을 먹었고 그리고 그 접시의 짬을 처리하지 않고 그냥 쌓아서 분리수거하는 바구니 안에 던져놓다시피 하고 갔단다. 그리고 오빠가 세 번 정도 인사를 했는데 대답조차 하지 않고 가버렸다는 것
그걸로 오빠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포인트는 인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뷔페집에서 그릇 많이 쓸 수 있지. 팔천 원짜리 한식뷔페에서 일곱 개의 그릇은 과하긴 했지만
뭐 음식이 섞이는 게 싫었겠지.
손님이 없는 시간이었으니까 한 시간 정도 밥을 먹을 수도 있지.
모든 걸 다 이해하더라도 인사에 대꾸가 없었던 것이 오빠에게는 가장 화나는 일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녀는 또 왔다.
그녀가 내미는 카드가 국방부 카드였기에 우리는 그녀를 기억하기 쉬웠고
그날도 여전히 그녀는 그릇을 여덟 개 쓰고, 남은 짬을 버리지도 않았고 그릇도 정리하지 않은 채 바구니 속에 모두 포개어 넣고 가버렸다.
이젠 내가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뒤, 제부가 카운터를 봐주던 날이었는데
그녀가 오자마자 나와 오빠는 눈빛을 교환했다.
오늘도 그러고 가면 한소리 하자! 뭐 그런 의미였다.
그녀가 밥 먹길 한 시간을 기다렸고 그녀가 일어나자 우리는 한 소리를 하기 위해 오빠가 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주방에서 나오던 제부가 그녀의 짬 그릇을 냅다 받으며
" 그냥 저 주세요. " 했던 것이다.
그녀가 가고 나서 우리는 제부를 타박했다.
"제부 오늘이 기회였단 말이에요. 한소리 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사정을 듣고 난 제부가 한마디를 했다.
"근데 그 여자분... 정상이 아닌 거 같던데요!"
"헐~~~"
제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우영우 같다고 했다.
자신이 늘 앉는 자리에 손님이 있으니까 어쩔 줄 몰라하며 자리를 골랐고
그 행동이 일반인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걸 본 제부가 그녀를 도와준 것이다.
그 순간 오빠와 나는 말이 없었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맞다. 그녀는 정상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동안 그녀에게 가졌던 모든 괘씸함이 사라지고
다음에 그녀가 오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어야겠다 맘먹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어떤 누군가와 싸움이 벌어져서 내게 자문을 구해오는 모든 친구 후배들에게
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 장애인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고 도와줄 것을 찾듯이 마음에 장애가 있는 친구를 왜 굳이 이겨먹으려고 하니
그냥 참아~ 참고 안타깝게 바라보자"라고 말했던 나인데
꽤 사람을 잘 관찰한다 자부했던 내가.......
그녀를 그냥 밥 많이 먹고 그릇 많이 쓰고 매너 없는 손님 정도로 치부하고 화만 나 있었다는 사실이
쪽팔렸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생 성희도..... 놀랐다.
오빠와 나. 제부와 동생 우리 네 사람은 다시 그녀가 식당을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바뀐 게 없는데.....
우리의 생각 하나로 우리의 시선이 바뀌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런 시선으로 봐줘야 하는데
나는 인간인지라.... 가끔.. 이걸 까먹기도 한다.
그녀는 장사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손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