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Self-savotage, 자기 훼방의 법칙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욕구를 가진다. 욕구에 의해 자타인에게 표현된 결과물들이 경향성을 띄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그 사람의 성향으로 인식한다.
개인의 성향은 선천적 자아가 후천적 교육에 의해 성숙해지며 결정되며, 개별의 성인에게 정착된 성향들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표현된다. 사회 심리학자들은 성격의 표현형에서 일관성을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적 성향 분석 도구틀을 고안했다. MBTI 검사가 한 예이다. 우리는 16가지 유형의(실로는 훨씬 더 다양하겠지만) 성향에 따른 결과를 관찰하면서 본능의 규칙성에 감탄한다. 다만 동일 유형의 MBTI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실질적으로 표현되는 정도는 개인에 따라 차이 난다. MBTI에서 제시한 표현형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한다. 자신의 성격에서 벗어나는 이유와 그것에 대한 평가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병원에는 여러 가지 의학 분과가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그려진 각 과의 특징은 현실적이다. 외과 계열(흉부외과, 신경외과등)은 다이내믹하고 과감함며, 내과 계열(내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등)은 차분하고 친절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20개가 넘는 의료 분과 중, 외부의 접촉이 적은 과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각 분과의 명칭에 따른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며, 나 역시 그랬다.
영상의학과는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각종 영상 자료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제시하며 판독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의 몸 안을 직접 관찰할 순 없으니, 현대 의료에서는 질병에 대해 간접적인 방법, 즉 초음파, CT, MR 등의 방법으로 주로 진단을 내린다. 따라서 영상을 판독하는 영상의학과의 의견은 질병의 진단 단계에 있어서 매우 절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상상 속 영상의학과는 꼼꼼하고, 정확하며, 계획적인,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Back pain(등 쪽 통증), 50대 남성이요! BP(Blood pressure, 혈압) 90/60, HR(Heart rate, 맥박) 100이고 drowsy mentality(의식 혼미)입니다. “
어느 날 새벽, 119를 통해 환자 한 명이 실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으며, 통증이 심한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50대의 건장한 남성의 혈압이 간당간당한 걸 보니 체내 출혈이 의심되었다. 서둘러 응급 초음파를 가져다 대 보았지만, 아직 복부 안쪽으로 혈액이 고여있진 않다. 대동맥의 문제인가? 싶어 대동맥에 flap [1]이 있는지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초음파는 숙련도에 따라 볼 수 있는 게 매우 달라지기 때문에, 나는 보다 확실한 CT 촬영을 바로 하기로 했다.
“선생님, 이거 뭘까요?”
후배와 함께 머리를 긁적이며 영상을 돌려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대동맥이 찢어져 보이긴 하는데 하필이면 그 부분에 artifect [2]가 생겼다. 하지만 다른 컷들과 환자의 증상을 보면 대동맥 박리가 거의 99%인 것 같았다. 이런 경우 대동맥 파열되기 전에 응급 수술이 진행되어야 하므로, 우리는 서둘러 수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 선생님! 판독이 정상으로 떴는데요.”
그때까지 영상을 붙잡고 있던 후배가 흉부외과 응급콜 번호를 누르던 나를 급하게 불렀다. CT 영상 판독이 정상으로 떴다는 것이다. 정상으로 판독된 영상은 흉부외과에게 응급수술을 제안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보통 영상판독의 결과가 생각과 다를 때 전화를 해서 상황 설명을 하면, 종종 의견을 고려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흉부외과가 아닌 영상의학과 당직의 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응급의학과입니다. 방금 판독 넣어주신 A환자, 다이섹(dissect, 대동맥박리) 같거든요? 등도 엄청 아파하고, 혈압도 떨어지고 있어요. 급하게 찍느라 혈액검사 결과도 없고, 진단명이 요통(대부분의 요통은 근골격계 질환이 연상된다)으로 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한 번만 다시 봐주세요. 저희는 응급수술 케이스(case)라고 생각해서요. “
“어디쯤이 박리 같아 보이세요?”
”Artifect 생긴 곳이요. 그쪽으로 초음파 대보았을 때 flap 은 명확하지 않은데, artifect 전후로 contrast(조영제) 흐름이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요? “
“아, 그 부분이요? 안 그래 보여서 normal이라고 판독 넣은 것인데요. “
음? 나의 생각과 다르게 영상의학과는 자신의 판독에 확고했다. 원래는 잘 바꿔주셨는데. 그는 우리가 의심한 부위가 너무 작아 대동맥 박리라고 판독을 주긴 어렵다고 했다. 판독이 정상이면 응급 수술이 지체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세게 나가기로 했다. 모름지기 응급의학과는 강력하게 말하는 게 미덕이지,라고 생각하며.
”증상이 너무 dissect인데. rule out(배제해야 함을 의미)으로도 생각되지 않나요? “
“네.”
피곤이 가득한 영상의학과는 판독에 이견을 제시한 것이 매우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판독이 응급 수술의 여부를 가릴 수 있었으므로, 더욱 예민한 듯했다. 사실, 이때 멈췄어야 했는데, 평소와는 다른 영상의학과의 반응에 나는 더욱 강하게 부딪혔다. 이 정도면 싸우기 싫어서라도 바꿔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선생님, 영상 판독이 normal로 나와도 흉부외과에 협진은 진행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수술 들어가서 진단명 뜨면 곤란하실까 봐 그런 건데. 판독에 룰아웃 넣는 거, 쉽잖아요. “
“제 판독이랑 상관없이 연락하실 거면 왜 저한테 판독 바꾸라고 하는 거죠? 이거 월권 아닌가요?”
”예비 판독이 문제 될 수 있으니까 말해주는 게 월권인가요? “
“그건 제가 알아서 책임질게요. 저는 안 바꿉니다.”
전화가 던지듯 끊기는 순간, 아차 싶었다. 영상의학과의 책임 때문에 권유한 게 아니라, 수술에 대한 결정에 힘을 싣게 만들기 위해 판독을 재고해 달란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내 머릿속 영상의학과는 언제나 친절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못 이기는 척 판독을 수정해 줄 줄 알았는데, 그날의 영상의학과 당직의는 상상과 달랐기 때문에 당황한 나는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 상의‘가 아니라 ’ 협박‘을 한 것이었다. 되짚어 보면 영상의학과 당직의의 말대로 내 진료 결과를 토대로 흉부외과에 연락하면 됐는데, 영상 판독의 힘을 빌리고자 한 것은 결국 내 실력에 자신이 없던 결과였다. 영상의학과 당직의 와의 전화를 끊는 순간,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평소의 내가 아닌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 나는 이성을 잃고 우겼던 것일까? 의견이 무시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다 떠나서, 환자를 위한 것이었을까?
태도는 어떤 현실에 대해서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반응하려고 하는 준비의 상태이다. 따라서 선험적 경험에 따른 지향성을 띤다. 대부분의 경우, 선행적 경험이 없어도 학습에 의해 적절한 태도로 반응하지만, 때때로 준비되지 않은 현실을 마주치면 당황한다. 자신의 태도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외부의 것에 적대적이다. 자신의 것에서 벗어난 경험에서 실패하거나 당황하는 빈도가 높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또한 관성이라는 안정감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자극에 대해 불필요하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보인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하며 교훈을 얻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경험 자체를 회피하며 학습의 기회를 포기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자신의 성향이 확고하며 정교해질 수는 있지만, 그 외의 것에 사회적 허용을 넘은 적대감을 보이며, 이에 대한 타인의 거부감에 대해 적대감을 보이는 일을 반복한다. 결국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 옳다는 생각은 편협한 시각에 정당화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단독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이다. 사회문화적 교류의 장에서 사회화 교육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신을 올바로 파악하고 타인에게 매력적이며 교류하고 싶은 상태로 보일 수 있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이런 학습은 전 연령을 아울러 일어나게 되며 항상 경험하고 배우고, 자신의 습관을 유연하게 하려는 마음가짐을 길러야 한다.
따라서 자기 훼방은, 자신의 단점을 알고 안정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벗어나 발전을 하고자 할 때, 빛을 발휘한다.
주석 :
[1] 대동맥 박리의 경우, 동맥 혈관 벽이 무너져 심박동에 따라 팔랑거리는 종잇장 같은 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flap이라고 한다.
[2] 영상 촬영 중 주변물에 의한 간섭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정확한 판독이 어렵다.
[Reference :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위즈덤 하우스, 2019]
[사진출처 : “절규“, 에드바르 뭉크, 1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