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코로나에 대한 마지막 글
지난 주 스웨덴 공영방송 svt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스웨덴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되돌아보는 다큐멘터리 <Bakom Den Svenska Modellen(스웨덴 모델 뒤에서)>가 방송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20년 3월부터 2021년까지 사회보건부 장관 레나 할렌그렌, 공중보건청의 요한 칼손(당시 청장), 안데스 테그넬(국가 역학자)과 카린 테그마르크 뷔셀(당시 국가역학자, 현 청장) 등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해서 나온 다큐멘터리여서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다소 베일에 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정책결정과는 달리 그들의 진솔한 뒷모습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공개가 사후에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었습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안데스 테그넬이 약 30여년 전 아프리카 라오스에서 발발한 에볼라 바이러스 통제를 위해 WHO에서 일할 때 수행한 인터뷰로 시작합니다.
아니요, WHO는 사회를 닫는 것의 효과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닫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가둘 수 없어요.
그리고 30년 후 안데스 테그넬은 이웃 국가들이 락다운에 돌입하는 것을 목도하며, 여전히 사회를 열어둔 스웨덴이 국제사회의 아웃라이더가 되었으며 "집단면역 실험"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들은 전염병 발발의 매뉴얼대로 행동했으며, 오히려 스웨덴을 제외한 바깥 세계가 "락다운 실험"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팬데믹을 어떻게 다뤄야할지에 대한 수십년 간의 토론 끝에 우리는 몇 가지 작은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사회를 닫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하지 말자고 합의했던 것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행동했다고 생각한 저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회보건부 장관 레나 할렌그렌 또한 스웨덴이 락다운을 하지 않은 이유를 변호합니다.
사람들이 문을 닫으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무슨 효과를 가지고 왔습니까? 저는 락다운이 가지고 온 효과를 알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비난할 때 저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비난한다고 그들의 상황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국가가 당신을 집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위기가 끝난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저는 그것에 대해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레나 할렌그렌의 말은 사실입니다. 락다운을 한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스웨덴은 오히려 누적 사망자나 초과사망률의 관점에서 유럽연합 평균보다 준수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락다운 없이 코로나19를 견뎌낸 스웨덴은 물론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비난하던 것과 비교하면 성공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카린 테그마르크 뷔셀 공중보건청장(2020년 당시 국가역학자)은 락다운 대신 자발적 조치에 의존한 "스웨덴 모델"을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락다운을 푼 이후 숫자가 올라가면 다시 락다운을 해야 하나요? 이미 우리 이웃 국가들이 보여주고 있듯 한번은 몰라도 두 번째부터는 사람들이 거부할 것입니다. 우리가 맡은 임무는 코로나19대응뿐 아니라 전반적인 공중보건의 향상입니다. 사회의 문을 닫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고립감을 증가시키고, 전반적인 공중보건의 하락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집에 머무르고, 더 자주 손을 씻고, 더 거리를 두는 등 행동을 수정하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을 강제로 집에 머물도록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카린 테그마르크 뷔셀의 말 또한 사실입니다. 스웨덴은 강제적 조치보다는 권고 위주로 운영되었지만 락다운이 내려졌던 다른 국가들만큼이나 이동량을 줄였으며, 심지어 모든 제한조치가 종료된 지금도 재택근무가 유지되는 등 "뉴 노멀"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권고로 대응하던 스웨덴에도 사망자가 급증하자 "요양원 방문 금지"라는 첫 번째 강제조치가 시행됩니다. 레나 할렌그렌은 이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며 "우리는 왜 요양원으로 감염이 확산하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다(코로나 초기 무증상 감염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평가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 때까지 일시적으로 요양원 방문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합니다. 안데스 테그넬 또한 "우리는 이 문제를 놓치고 있었으며, 어떤 조치를 취했어야만 했다"라고 후회합니다.
하지만 안데스 테그넬은 "팬데믹 통제"를 하지 않아 요양병원에서의 코로나19 확산을 야기한 것처럼, 다시 마찬가지 이유로 코로나19를 통제하기 위한 팬데믹 통제로 인해 잃는 문제도 있을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팬데믹 시기에 가장 취약한 부분인 요양병원에 대한 통제를 놓쳐서 갑작스럽게 방문 금지를 도입했지만, 이 또한 노인들의 정신 건강을 놓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아가 통제조치가 미치는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해 우려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슬픕니다. 팬데믹이 우리 사회를 할퀴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이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염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잃었습니다. 코로나는 이것에 걸린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일부는 죽게도 만들었지만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건 윤리적인 문제이지만, 공중보건학자로서 우리는 걸린 후 회복된 사람들의 삶과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삶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조치가 사람들의 삶에 끼칠 수 있는 영향들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 사이의 균형은 평가하기 힘듭니다.
(한편 이러한 균형은 평가하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학교를 닫는 것은 비용이 훨씬 크다는 명확한 결과가 있었고, 스웨덴은 한 번도 휴교령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 또한 1차 락다운과 달리 2차 락다운에서는 학교를 열어두도록 하는 등 부분적으로 스웨덴 모델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2020년 12월 스웨덴에 2차 파동이 오기 시작합니다. 사망자 수는 1차 파동보다 더욱 높아졌고, 이웃나라들은 다시 락다운에 돌입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스웨덴 또한 국제 흐름에 맞춰서 락다운을 해야한다는 대한 요구가 빗발칩니다. 이에 카린 테그마르크 뷔셀 당시 국가역학자는 아래와 같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의 위험 평가에 따라 필요한 행동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우리는 이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가령, 요양원의 노인들은 가족을 만날 수 있습니까? 가족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그러다가 그 사람이 감염되면?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을 돌볼 것입니다.
공중보건국의 의견과 별개로 의료 시스템 압박으로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복지위원회(의료시스템 담당) 등과의 협의("펜데믹 정치")를 거쳐 스웨덴에도 8인 이상 모임 금지, 영업 시간 제한 등이 실행되었으나 강제적 조치는 의료시스템의 압박이 낮아지면 다시 사라졌습니다.
저는 스웨덴의 다큐멘터리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꽤나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사망자 또한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더 이상 제한이 강화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의 시민들도 코로나19 이외에도 세상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자영업자들의 생계, 아이들의 발달과 학생들의 성장, 노인들의 정신 건강 등 코로나19 통제를 위해 멈춰야만 했던 것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스웨덴을 오해했는지도 모릅니다. 스웨덴이 꿈꿨던 것은 "집단 면역"이 아니라 "자율 방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은 스웨덴 모델, 즉 자율 방역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의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성과 한국의 높은 백신 접종률 덕분에 정보도 부족하고, 위험성도 상대적으로 높았고, 백신 또한 없었던 스웨덴보다 "자율 방역"을 위한 좋은 조건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 통제는 이제 곧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프면 쉬겠다는 마음,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그 마음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팬데믹 정치력을 잘 발휘해서 자율 방역으로의 발걸음을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ps. 한국의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각각 "팬데믹 정치" 대신 신천지 압수수색, 중국발 입국 차단 등으로 팬데믹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또한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소개해드리는데요, 사회보건부 장관 레나 할렌그렌은 스웨덴의 보건조치를 ”대학살”이라고 지칭하며 당장 학교를 닫고 락다운을 하라는 스웨덴민주당(스웨덴 내 극우세력)의 비난이 담긴 문서를 보고는 상당히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런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읽을 시간이 없다”라며 바닥에 버려버립니다. 어디에서나 팬데믹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팬데믹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