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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Feb 14. 2023

# 05 쌍둥이자리에 있을 너에게

5.21~6.21

수메르 시대 쌍둥이자리의 주인공은 저승의 신인 네르갈이다. 저승에서의 이름과 이승에서의 이름이 각각 달랐음을 표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의견으로는 이집트에서는 남녀 쌍둥이로 표현했는데,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네르갈과 부인인 에리시키갈, 혹은 우투와 인안나 쌍둥이 남매의 상징이 넘어간 것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쌍둥이자리의 유성우는 가장 안정적이고 유성우수도 많은 편에 속해 화려한 유성우를 볼 수 있다. 카스토르와 풀룩스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살았던 게르만족 사이에서는 요툰 트야치의 눈으로 여겨졌다.


오늘은 너에게 어떤 날이야? 나한테는 별 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평일이었는데 말이야. 퇴근 시간만 맞춰 기다리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곤 했는데, 거기서는 조금 덜 무료하게 보내고 있으려나? 며칠 전에는 한참을 찾아보던 유모차를 마련했어. 이동 가방에 몇 번 탄 적이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적응했지? 굳이 유모차 아니 개모차라고 해야 할까? 그걸 사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도 잘 걷고, 현재 있는 운동량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는데. 사게 된 이유는 조금 더 편리하게 너와 함께 많은 곳을 동행하고 싶었고, 산책이 나가기 싫은 너를 위해서랄까.




우리 여전히 갈 곳이 참 많다 그렇지? 대학생 때 내 목표는 너와 많은 곳을 다니는 거였는데. 이건 서른이 지난 현재까지도 큰 변함이 없네. 조금 더 넓고 큰 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남들에게 좋았던 곳 보다 너와 나에게 좋은 곳을 위주로 찾아다녀 보자. 난 네가 행복해하면 그게 참 좋더라. 포근한 이불에 둘러싸여 햇살을 가득 받으며 일어나는 주말 아침보다 더.



추운 겨울이 지속되고 있어. 쌍둥이자리쯤이면 지금보다는 온화한 기후이겠네. 발소리에 민감하고, 비닐소리에 귀를 쫑긋하던 너였는데, 잠은 깊게 자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소리들이 들릴 테니 말이야. 그래도 네가 잠을 자는 순간에는 고요함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서는 부디 꽤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말이야.



이런 말은 모두 내 주관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거 알지? 사실 너는 우리 모두가 나가버린 뒤 고요해진 집 안에서 잠에 드는 걸 가장 좋아했을 수도 있는데. 다만 누군가 돌아왔을 때는 최선을 다해 맞이해 준 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간혹 너의 하이톤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순간 '몇 개월동안 집을 떠나 있었나?'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기도 해. 몇 시간 후 돌아와도 늘 반가워 죽겠다는 듯이 몸통을 비비는 너이니까 말이야.



소중한 흰 털도 그대로지? 정수리와 귀 끝에 뾰족뾰족 나 있는 흰 털들은 너를 쓰다듬을 때면 우수수 빠지곤 했는데 말이야. 집에서 청소기를 돌려도 네 털들은 자기주장이 강했는데. 먼 훗날에는 내가 그 털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발바닥에서 나는 구수하고 깊은 냄새도 그대로지? 네가 발사탕을 먹는 날이면 더욱 구수하게 진동하곤 했는데. 물렁물렁한 뱃살도 그대로지? 그래도 산책을 좋아하던 너라 여기저기 바쁘게 킁킁거리며 돌아다녔을지도 모르지.



사랑하는 대상을 잃으면 그 대상이 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물건, 체취, 발소리에서 빈자리가 느껴지고, 절대 그 촉각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이렇게 미래를 위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중에도 너의 존재가 참 애틋한데, 네가 없는 빈자리는 대비한다고 해도 그 깊이가 너무 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너무 깊게 가라앉으면 수면 위로 올라오기 힘들 텐데 말이야. 오늘도 네 하루가 건강하고, 따뜻했길 바라. 이 두 단어면 충분해. 나 역시 다음 생을 확신하지는 않지만, 만약 그 삶이 주어진다면 다음번에도 우리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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