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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Apr 22. 2017

산지, 식구가 되다

벵갈고양이 입양기



미세먼지고 뭐고, 보기엔 참 좋은 날. 여름에 가까운 뜨거운 햇빛을 뚫고 집 근처 펫샵으로 향했다. 결혼 전부터 계획하던 애묘인으로서의 생활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이번 주 나흘 간의 여행을 앞두고 있어 여행 후에 바로 데려올 생각이라, 미리 가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예닐곱 마리의 고양이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평소 키우고 싶었던 품종 중 하나였던 벵갈고양이. 길고양이들을 돌보며 만난 남편과 결혼한 덕에, 길냥이들을 닮은 단모 고양이들이 장모보다 정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딱히 어떤 품종을 키워야지 생각하진 않았었다. 어쩐지 교감이 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일 데려오자고만 얘기했었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깨방정 떨며 픽미 픽미 외치는 이 녀석을 보니 1주일을 더 기다리는 것도 망설여졌다. 가게 사장님이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들 중 두 마리를 키우고 계신다며 강권하자 오히려 더 주저하게 됐다. 생명을 들여오는 중요한 일을 마음에 들면 데려가세요, 뭘 고민하세요,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이미 심장은 요동치지만 그래도 좀 더 신중해지고 싶었다. 저희, 일단 밥 좀 먹고 올게요. 가게를 탈출했다.




 

시간을 갖겠다고 탈출은 했지만 둘의 마음은 진작에 '저 아이의 집사가 되겠어'. 뭘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 눈앞에 보이는 대로 대강 메뉴를 정했는데, 그마저도 맛있었다. 다음 주의 여행은 이미 구입한 자동급식기를 이용하거나 영 불안하면 호텔에 맡기는 것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막창이 나오기도 전에 이름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 때 개표방송을 보며 처음 손을 잡았었지. 그때 지지했던 대선주자는 이번 대선에도 출마하게 됐고 우린 이것도 인연인데, 대선을 앞둔 지금 '재이니'로 지을까. 우리가 같이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지? 손석희 옹을 따 '서키'라고 지을까. 일리단을 풀네임으로 '일리'라고 지을까.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던지다가 신혼여행에서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놨던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산 지미냐노'를 떠올렸다. 그 녀석 색깔도 그 도시와 닮았어. 그래서 '산지'가 됐다. 덕분에 영문 표기를 할 일이 있다면 'San Gi'가 되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너의 이름은 오늘부터 '산지'.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간 펫샵. 다시 우리를 폴짝이며 반기는 녀석을 미안한 마음으로 케이지에 담아 데려왔다. 역시나 불안에 떨고 있는 산지를 보며 아직은 미안한 마음뿐. 자꾸 들여다보는 것도 녀석에겐 공포일 지금, 보고 싶은 마음 꾹 참고 적응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하고 있다. 지금은 케이지 앞까지 발은 뻗었을까. 천천히 나와도 괜찮아. 오래오래 잘 해줄게. 같이 잘 살자, 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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