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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Mar 18. 2019

어려움 너머의 극한감동

[스팀] 할로우 나이트



벌써 출시 2년이 된 게임이지만 명성이 사그라들지 않는 '할로우 나이트'. 유명세에 기인한 두 가지는 '2D 다크소울'이라는 점과 본래 가격도 높지 않은데 그마저도 할인이 잦으며 여기에 엄청난 분량과 퀄리티의 무료 DLC를 자꾸 내는 '혜자게임'이라는 점인 것 같다. 걸작이라는데 포기를 하더라도 맛은 봐야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만원으로 할인할 때 구매했다가, 생일 즈음에 새로운 도전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과연 번지르르한 겉의 알맹이는 '할로우'하지 않을 것인가. 두구두구.





무언가가 주홍빛 눈을 뜨고 어디선가 부름을 받아 터벅터벅 길을 나아가는 우리의 주인공, 작은 친구. 워낙 작은 체구인지라 다들 '작은'을 붙여 부르고, 대부분의 NPC를 올려다보는 과묵한 캐릭터. 귀여운 망토를 두르고 대못을 무기로 삼아 모험을 시작한다. 벼랑 끝에서 착지해 내려앉은 곳은 흙의 마을 근처. 자연스럽게 기본 기술의 튜토리얼을 수행하며 전진하게 된다.





할로우 나이트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매트로배니아. 길을 개척해나가며 지도를 채우는 장르이다 보니, 그만큼 길찾기가 두드러진 목표다. 스토리를 진행하고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길을 탐험하는 것이 필수. 길치에게는 너무 험난한 여정일 수밖에 없지만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는 재미가 굉장히 크다. 각 지역에서 지도를 얻기 위해 만나야 하는 NPC '코니퍼'의 콧노래는 그 무엇보다 반가운 사운드. 숨은 길을 찾을 때의 쾌감이 엄청나서 헤매더라도 짜증스럽지 않고 즐겁다. 지역마다 독특하게 구성된 환경 요소와 분위기를 압도하는 배경 사운드, 특유의 음향효과들은 새 지역을 탐험하는 기쁨을 배가시킨다.



플랫포머 형식이다보니 점프 및 대쉬 기술을 요하는 기본적인 컨트롤이 좋아야 수월하긴 하다. 고통 뒤의 달콤한 보상 때문에 포기할 수 없지만 어려운 구간이 많은 것은 사실. 그래도 휴식 포인트들이 대부분 훌륭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근성만 있다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컨트롤의 차이는 소요 시간에 차등을 줄 뿐, 불가능한 수준은 절대 아니다. 반복하면서 나아질 때의 뿌듯함도 클 수밖에 없고.



RPG라는 점도 의미를 둘 만하다. 기술을 배우고 무기를 강화하고 효율 좋은 부적을 얻어가며 성장하는 레벨링이 완벽에 가까운 수준. 내가 강해지는 만큼 만나는 적들의 강도도 강해져서 성장했다고 시시해지지 않고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여러 모로 부족한 시절 만났던 적들과 특정 구간들은 기술 뿐 아니라 컨트롤도 성장한 나에게 쉬워지기는 하는데, 그런 차이가 있어 성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강화된 대쉬 기술들로 이동속도가 빨라지긴 하지만, 이동이 잦은 만큼 이동수단에 대한 중요성은 매우 크다. 지도 곳곳에 있는 벤치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 체력을 회복하고 능력치 조합인 부적을 변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도 갱신과 시작 포인트를 변경할 수 있는 꿀기능이 있다. 시작 포인트를 변경한다는 부분은 아주 중요하다.



할로우 나이트는 한 번 죽으면 영혼인 '그림자'와 화폐인 '지오'를 모두 잃는데, 영혼을 다시 찾아가서 무찌르면 잃었던 지오를 싹 회복할 수 있다. 어차피 저장은 자동저장이라 진행 정도를 잃지는 않는다. 죽더라도 그림자만 다시 찾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건데, 문제는 그림자를 찾으러 가는 길에 죽어버리면 얼마를 가지고 있었든 빈털터리가 되어 버리는 것. 많은 이들이 여기에 낙심하고 포기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플레이 하다보면 5천 지오 이내로는 금새 모이므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상심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 포인트를 열심히 발견하고, 적절한 위치의 의자에 앉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



벤치 중에서는 대부분 지역에 하나씩 있는 사슴벌레 정거장이 있다. 할로우 나이트에서 대표적인 이동수단인 사슴벌레는 인력거 정도의 느낌으로, 마지막 남은 늙은 사슴벌레 한 마리가 나를 위해 부르면 달려와서 다른 정거장 어디로든 데려다 준다. 사슴벌레의 사연은 할로우 나이트의 디테일한 세계관을 담고 있는 서브 스토리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 스토리도 기능도 훌륭한 사슴벌레님을 애용하자.





탐험을 하며 수집할 수 있는 것들 중 중요한 것으로는 화폐인 지오, 부가 능력치인 부적, 진행에 필수적인 몇 가지 기술. 그 외에 중요한 것으로는 기초 체력을 올려주는 가면 조각과 스펠의 자원을 담아두는 영혼 그릇 조각이 있다. 지오가 넉넉할 때 이것들을 파는 상인을 구한다면, 부적칸 다음으로는 이 두 가지의 조각을 가능한 선에서 우선 사는 것이 좋다. 그 다음으로는 숨겨진 곳들을 열 수 있는 열쇠들을 구입하면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곳곳에 갇힌 애벌레를 구해주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시작 지점인 흙의 마을 아래에 있는 애벌레 둥지에서는 여기저기에서 구해 온 애벌레들이 행복하게 쉬고 있다. 애벌레를 구해올 때마다 할아버지 애벌레가 보상을 던져주는데, 구조한 애벌레의 수에 따라 단계별 보상을 준다. 모든 애벌레를 다 모으면 업적과 부적을 얻을 수 있다. 애벌레의 위치는 특정 장소에 특수한 열쇠를 이용해 들어가 애벌레 지도를 얻어야만 정확히 알 수 있다. 애벌레 지도가 없더라도 애벌레가 우는 소리를 따라 숨은 길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다만 애벌레들이 있는 곳은 메인 루트보다 어려운 환경물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컨트롤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애벌레를 모두 구하면 받을 수 있는 '애벌레의 애가'라는 부적은 꽃배달 퀘스트를 진행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꽃배달 퀘스트는 배달하는 길에 가면 조각 하나만 잃어도, 전차를 제외한 빠른 이동 수단을 이용해도 꽃님이 너무 연약하신 이유로 파괴되어 버린다. 이걸 완수해야 가면 조각 하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면 조각을 구하려는 플레이어라면 무조건 진행해야 한다. 꽤 뭉클한 스토리인 데다 다방면에서 인상적인 퀘스트이기 때문에 꼭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부적 시스템은 할로우 나이트 전투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 하나씩 모으는 과정도 재미있고 저마다 얽힌 사연들이 특별하다. 특정 상황이나 보스 타입에 맞춰 부적을 바꿔 끼우는 것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상황과 내 손에 맞는 최적의 부적을 사용해 역경을 딛어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무엇. 대체로 좋은 부적들은 고정적이지만 착용할 수 있는 부적의 개수와 비용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급적 부적 칸수를 늘릴 수 있을 때 열심히 늘려야 한다.





특정 이벤트를 보기 위해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 부적이 있기도 하고, 진엔딩 조건에도 특수 부적이 필요하다. 부적을 얻기 위한 과정은 내가 슈퍼미트보이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역시 새로운 고난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맛은 그 어떤 것보다 꿀맛. 내 경우에는 진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은 겨우 맞췄지만 정작 진보스를 만나고도 잡지 못한 처지. 백색궁전의 고통의 길도 문앞에서 구경만 해봤다. 빛나는 그 녀석은 언제 잡아서 진엔딩을 볼 수 있을까.





무수한 적들과 전투하는 게임이다 보니 도감을 채우는 것도 재미요소다. '사냥꾼의 일지'에는 그간 만난 적들과 일정량 처치해서 완성한 적들이 기록된다. 할로우 나이트에 등장하는 모든 개체들은 벌레와 곤충 혹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실제 생물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현실에서 벌레와 곤충들은 거진 귀여울 리 없지만 게임을 하다보면 사랑스러워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사냥꾼의 일지를 완성하는 업적도 존재하나, 진보스는 물론 투기장 3라운드와 만신전 돌파를 못한 나에게는 멀기만 한 일이다.






그래도 할로우 나이트 3대장 보스라던 '악몽의 왕 그림'은 잡았다. 나날이 성장한 게 스스로 기특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성장했으니 언젠가 진보스도 잡지 않을까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할로우 나이트의 보스들은 처음에 절대 안 될 것 같아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패턴에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 잡게 된다. 개발자들이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게 하는 적정 수준의 난이도를 잘 만들어낸 듯.





진보스와 함께 도전하고 있는 신들의 고향. 특정 보스뿐 아니라 10여 마리의 보스가 라운드로 등장하는 만신전은 봉인을 걸고 진행할 수도 있다. 대못, 껍데기(가면), 부적, 영혼의 봉인 중 네 가지를 모두 묶어버리면 문이 금색으로 바뀐다고. 말도 안 될 것 같은 일인데, 금문을 달성하는 분들도 실재하더라.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 봉인은 됐고 1문이라도 달성해보고 싶다.



한 번 잡았던 보스들은 아랫층에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각 보스들을 종류, 승천, 찬란 모드로 플레이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이상의 단계가 또 있는 모양...) 각 보스들의 사운드트랙과 서식 환경에 신전에 왔다는 느낌을 잘 살려둬서 좋아하는 보스를 다시 플레이하는 것 이상의 재미가 있다. 호넷의 경우 음악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나와서 감동 백배. 난 이제 갓 입성해서 조율과 승천 단계의 보스들이나 한 두 마리 잡고 있을 뿐이지만,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야말로 갓-장소.





초회차 플레이에만 거의 60시간이 걸렸다. 처음 공허의 기사를 잡고 엔딩을 본 건 35시간 즈음이었으니 남들에 비해 꽤 느린 편. 방송을 하면서 진행해서 고수분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에 덜 헤맨 편인데도, 워낙 길을 잘못 드는 경우도 많고 보스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별 수 없었던 것 같다. 진보스와 만신전에 도전하다보면 100시간은 조만간 넘기지 않을까. 멋쟁이 호넷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후속작이 나오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할로우 나이트는 어려운 게임인 게 맞지만, 더럽게 어려워서 못 해먹을 게임은 아니다. 도전하고 싶게 하는 매력이 엄청나다. 몇 번씩 트라이해도 매번 마음을 다잡게 하는 아름다운 배경 그래픽과 사운드트랙은 극복하고 났을 때 추억할 수 있는 최고의 장치. 소수의 인원으로 제작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장소의 아름다움이 개성 있고, 파면 팔수록 깊디 깊은 게임이다. DLC 하나하나만 해도 분량은 물론 새로운 재미를 주는데, 이걸 다 무료로 풀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 정가에서 3배는 더 받아도 충분하다. 심지어 킥스타터를 후원했던 사람들에게는 후속작도 무료라니, 팀 체리에게 돈 버는 법 좀 누가 알려줬으면. (그 돈으로 굿즈도 더 만들어보란 말이야!)



개인적으로는 인생게임의 반열에 올린 오랜만의 게임. 어려운 게임이라면 무조건 손을 대지 않고, 특히 플랫포머는 컨트롤의 심각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어 미리 포기하기 일쑤였다. 할로우 나이트는 압도적인 명성과 취향에 맞는 아날로그 감성 때문에 어영부영 도전하게 된 케이스라, 끝까지 플레이 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일반 엔딩이나 보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집 요소까지 적지 않게 돌파하고 만신전을 기웃거리게 될 줄이야.



할나와 함께한 2주 동안 정말 행복했다. 작은 친구와 호넷은 꿈에도 나오고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는 할로우 나이트 무한반복 중. 방송하는 내내 부족한 할린이를 굽어살피며 친절하게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이런 게임이 세상에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시도하지 않았다면 별 수 없지만, 손댔다가 포기했다면 꼭 사마귀 군주를 무찌르고 이후 지역부터가 할나중독 포인트니까 꼭꼭 포기하지 말고 다시 했으면 좋겠다. 제바알-!




+

눈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다른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방송 켜고 잡으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쉽게 잡는다는데 왜 나만 이렇게 부족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드니 멘탈이 터져서 1시간 반 만에 방송은 종료. 도저히 잠이 안 와서 각 잡고 빡겜했더니 1시간 만에 드디어 광휘를 잡았다. 일반 엔딩을 봤을 때보다 더한 감동! 게임을 드디어 마친 느낌이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마음으로 만신전에 도전해야지. 게임 자체의 재미 때문에 하면 할수록 더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스포주의★ 진엔딩 - 광휘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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