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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Apr 08. 2019

상실의 극복을 담은 아트

[스팀] 그리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몽환적인 분위기로 출시 전부터 기대하던 퍼즐 게임 "그리스(GIRS)". 게임의 경험은 트레일러와 일러스트만으로 느낄 수 없지만, 출시 후 쌓여가는 플레이어들의 평가와 노미네이션 리스트로 특별한 게임이라는 확신이 굳어져갔다. 조금 마음이 지칠 때, 가끔은 숙제처럼 쌓이는 게임이 바닥날 즈음 여유롭게 플레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껴두었다. 그렇게, 늦는다 싶었던 봄이 와락 안겨 온 4월의 첫 주말, '지금이다' 싶었다.





장르는 퍼즐 플랫포머. 사이드뷰의 맵을 이리 저리 오가며 퍼즐을 풀고 길을 열어 나간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나 싶으면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무채색이던 화면은 하나씩, 하나씩 고운 색으로 물들어간다. 좌우 이동과 점프만 가능하던 캐릭터는 돌이 되어 바람에 저항하거나 땅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점프를 하며, 고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일러스트와 음악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지만, 아주 가끔 점프를 동반한 컨트롤을 요하기도 한다. 심각한 컨트롤 장애가 있는 나도 10트 안에는 구간을 넘어가곤 했으니 크게 부담 가질 부분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길을 헤맬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도가 없는 시스템이라 심각한 길치는 걱정이 들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먼 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멀리 가서 길을 잃지 말고 주변을 잘 살피면 문제 없다.



다만 퍼즐을 풀기 위한 길을 안내하기 위해 화면의 줌 아웃 정도가 심해지는 경우, 캐릭터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불편은 있다. 퍼즐 풀이보다도 예쁜 게임을 보다 예쁘게 즐기는 데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안이 진행되고 있다면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기는 하다.





대사 하나 나오지 않는 이미지 게임인 데다 추상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세계는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여인 형상의 동상은 대체 무슨 사연이 얽힌 걸까, 엔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건지 의아해하며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의 멋진 엔딩을 보고 나면 분명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추측과 이에 기반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 스토리와 결말에 대한 의견: 내 생각엔, 주인공 소녀와 부서진 조각으로 표현된 여성은 엄마와 딸 정도의 굉장히 가까운 사랑하는 관계.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슬퍼하던 소녀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일 것 같다. 엄마에게 기대려던 소녀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린 후, 다시 위로 올라가려 하지만 자꾸만 실패하고 떨어지고 만다. 엄마와의 기억들을 되짚으면서 조금씩 이겨낸 소녀는 누워있는 엄마를 마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의 길을 따라 올라가는 데 성공한다. 하나씩 채워지던 색은 무채색이자 슬픔이던 소녀의 마음에 삶의 면면이 아닐까. 업적의 이름과 달성되는 과정에 미루어도, '슬픔의 5단계'에 해당하며 수집품의 이름도 'Memory(기억)'이다. 엔딩 이후에 달성 가능한 숨겨진 업적의 이름도 '어린 시절'. */



바르셀로나의 개발사라는 "노마다 스튜디오(NOMADA STUDIO)"가 정확히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대할 때에도 같은 마음인데, 작가는 무언가를 의도했든 우리가 감상하고 무언가를 느낄 때 우리가 무엇을 느끼든, 각자 얼마나 다르게 느끼든, 심지어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과 얼마나 다르든, 무언가를 느꼈다면 그로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자, 아니 이 아티스트들이 무얼 의도했든지간에 내게 느껴진 건 굉장한 아름다움과 감동이었다. 의지했던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라면 너무 애틋해서, 감당하기 벅찼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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