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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Apr 30. 2024

황무지 (黃無知)


황무지 (黃無知)



서산에 해 떨어진다.


언제나 새파란 줄만 알았는데

흐릿해진 눈밝힘으로

저무는 황혼녘 앞에 서서

홀연히 감상에 젖는다.


중천에 떠 눈이 부셔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지는 해

온전한 몸뚱이 이제 보니

경외롭기만 하다.


붉게 물든 노을에 빠져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하던

그때   

온 몸에 피가 거꾸로 솟아

분기를 사르며

진군의 깃발을 들고 해방을 노래하던

짧았던 열의 시간들


가슴을 태우고 열정을 태우던

꿈도 사랑도

점점 기억의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이제 다시는

오지 않는다 하니

서산에 지는 해가 아쉬워

말없이 석양을

바라만 본다.


땅거미가 스며들어 어둑해지면

눈감고 걷던 익숙한 길도

어둠에 물들어 어두워질까

서둘러 돌아 서야 한다.


그렇다고 거꾸로 진 말아야지


석양이 잠 검붉은 호수를

관조하자

노병은 살아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건 욕심이고

무모한 환상으로 허무감만 늘어날


얼굴을 묻고

끝트머리만 남은 해

내일 다시 뜰터이니

느릿한 걸음도 흐릿한 기억도

세월의 한 조각이라

실은 그리 아쉽지 않다.


그새 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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