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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Feb 12. 2024

채워지는 모래주머니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지?

가끔 지나다가 보는 저 사람은 사는 게 괜찮을까? 

저 사람은 참 걱정 근심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 하늘마저 무심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모두 자기의 밥그릇 정도는 아프고 살아가는 것이라 치부하고 사는 게 내가 덜 초라해 보였다. 


매일같이 어려운 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 하루에 담아내가 버거운 벅참이 턱 밑까지 차올랐을 때에는 이제는 좀 맷집이 생겼는지. ' 이래서 죽겠나? ', 그래서 '누가 죽었는데?' 정도로 웬만하면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래도 아이 일에 관해서는 전혀 괜찮아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아이를 내 목숨같이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눈꼽만치의 애미-bases는 가지고 있으니 적어도 금수는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를 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전혀 쿨하지 않았던 어젯밤의 일은 정말 기겁할 만큼 놀라서 아직도 다리가 휘청 거린다. 

아이와 방을 따로 쓰는 나는 각자 토요일을 실컷 누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가끔 나쁜 꿈을 꾸거나 갑자기 중간에 깨면 내 방으로 와서 같이 자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아이가 옆에 누운 지도 모르게 잠에 파묻혀 자고 코를 골고 있던 나는 뭔가 흠칫하는 기분 나쁜 소름 끼침에 잠에서 꺠어났다. 


머리에 번개 같은 섬광 같은 본능이었는데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다. 

불은 꺼져 있었고 모든 게 깜깜한 상황 속에서 그 소름 끼침 때문에 깨어나 아이에게 손을 댔는데 뭔가 심한 떨림이 느껴졌다. 당장 일어나 불을 켜고 보니 아이의 눈의 흰자만 보이고 몸 전체가 굳어 전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입에서 침을 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는 숨을 거의 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입에서는 약간의 피를 머금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아이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혹시 질식사고는 아닐까 해서 입의 분비물을 빼고 등을 치고 있었다. 일어나라며 제발 일어나라며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손과 발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 911을 부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다른 한 손을 붙잡고 통화하는 사이에도 아이는 끅끅 거리며 돌아간 눈자위가 돌아오지 않고 아이는 떨었다. 


전화한 지 10여분이 지나고 911 요원과 통화하는 사이 아이는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풀어진 팔다리가 허공을 규칙적으로 휘젓고 있었다. 돌아온 흰자위는 아이의 동공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는 아이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겨우 숨을 쉬고 바지에 오줌을 싼 아이는 앰뷸런스와 요원들이 도착한 그 순간에도 상황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로, 대충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지갑과 아이 크록스를 챙긴 채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서야 정신이 돌아온 아이는 온몸이 결박된 채로 심전도를 체크하기 위한 줄에 당황하며 울부짖었다. " 엄마 집에 가고 싶어!!" 그렇게 온몸으로 소리 지르던 아이를 보며 나는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살았구나'


나중에 확인을 해 보니 아이의 의식은 내 침대에서 몸을 떨 때 잠깐, 그리고 그 이후로 죽 black out 되었다가 구급차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열한 살이 되도록 그 흔한 알레르기 반응도 없이 건강하던 아이가 발작이라면, 그리고 그 흔한 감기도 잘 걸리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뇌전증 증세가 나타난다면, 그 또한 대단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이 병동의 입원실에서 힘없이 늘어진 아이를 보며 찾아본 뇌전증은 흔히 간질이라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었다. 그 드라마에서 가끔 보던 그거? 하며 흠칫 놀라 자세히 검색해 보니 '원인 모름' 혹은 스트레스로 인한 외상의 발로로도 일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양가 모두 이런 증상은 없었기에 후천적이라는 검색 결과에 나는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아니 차라리 선천적이면 누구 하나 잡고 탓이라도 할 텐데. 이건 뭐 원인 모름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조그마한 아이의 뇌를 휘젓고 다니는 극성 뇌파 중 하나는 11년 인생 중 하나에서 파생되었다는 게 아닌가. 4살에 건너온 미국살이 그리고 한국에서 있었던 날보다 이젠 훨씬 넘어가는 여기에서의 삶에서 아이는 그토록 발버둥 치며 살아온 탓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달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국에서의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일어난 이곳에서 나는 또다시 얼어나야 만 하는 상황에 맞닿뜨리게 되었다. 아이는 어쩌면 평생 질병일지 모르는 발작을 달고 수영도, 자전거도, 등산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상황과 마음 같지 않은 기억력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지도 모르겠다. 


참 웃긴 건, 이 모든 상황이 하루 만에 일어났음에도 ' 아 진짜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눈을 뜬 아이에게 나폴레옹도 소크라테스도 그리고 네가 모르는 엄청 엄청 뛰어난 사람들도 사실 뇌전증 환자였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던 나를 발견한 거다. 


엄마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면서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며 간밤에 일어난 모든 소동을 친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걸 보며 순간 당황해서 진정시켰지만 사실, 마음 한편에서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입원실에 오도카니 앉아 이 응급상황을 이야기할 가족도 친척도 이웃도 없는 그날의 외로움이었지만 여전히 이 삶을 선택하기로 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저 상황에 놀란 가슴을 스스로 다독이며 지키는 수 밖에는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잘못 탄 줄 알았던 차는 항상 예기치 못한 다른 곳으로 나를 이동시켜 주었지만 항상 결론은 더 나은 곳이었다. 이번에도 믿어 보는 수 밖에.


내일 아이 학교 선생님과 간호사에게 전달할 memo를 적고 있는 나는 여전히 그냥 나이다. 아마존에서 혹시 발작이 일어나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아이를 위한 보조침대와 모서리 방지 테이프를 구매하고 있는 나도 그냥 나이다. 이 수많은 ' 나' 사이에서 괜찮지만은 않은 상황을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나도 내 내부 생채기가 생길 예정이다. 피폭은 항상 후에 발현이 되기에 어쩐지 후폭풍이 무섭긴 하지만, 그때는 나를 도와줄 다른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본다. 


순간 다 놓고 하늘로 가고 싶다가도, 또 어찌어찌 버티다 보면 또 살아가지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면서도 그럭저럭 이렇게 살아가는 걸 보며 인생의 거룩함(?)을 담아보기도 한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하나하나 불과 몇 시간 전의 일들을 자세히 떠올리게 되었다.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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