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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yJee Nov 05. 2021

대학원 꼰대의 '라떼는' 이야기-#6

#6. 교수님이 화를 내는 이유

오늘 랩 미팅 시간에 우리 박사과정 학생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털렸다. 처음엔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거다. 평소보다 과하게 혼내시기에, 뭐 기분 나쁜 일이 있으셨나 하고 묵묵히 듣고 있었는데, 사십 분쯤 혼나고 나서 드디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은 이번 주 내로 논문을 투고하려고 했으나, 이 박사과정 학생이 실험이 잘 안돼서 실험을 더 해보겠다고 해서 투고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은 왜 화를 내실까? 우리는 왜 허구한 날 혼날까? 우리는 왜 항상 지적을 당하는가?

간단히 결론부터 말하면, 뭔가가 맘에 안 드신 거다. 그것은 주로 데이터일 것이고, 때로는 태도일 것이며, 드물게는 다른 문제인데 잘못 걸려 화풀이당한 걸 수도 있다.


사실 내가 교수도 아니고,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이유를 어떻게 알겠나.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꼰대라떼의 경우를 생각해 봤다. 내가 후배님들에게 울컥 화가 날 때는 '같은 잘못을 반복할 때' 더라. 뭐, 처음은 그럴 수 있다. 잘 가르쳐 주면 된다. 두 번째도 그럴 수 있다. 아직 머리와 몸에 체득이 안됐을 수 있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는 성실의 문제이며 게으름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처음 가르쳐 줬을 때 적었어야 하며, 아직 습득하지 못했거나, 실수할 것 같으면 적은 것을 보고 해야 한다. 누구도 천재가 아니니까. 천재라면 나한테 배우지 않았겠지. 내가 너님한테 배우고 있겠지.  

이런 일은 주로 실험할 때 일어나며, 데이터를 분석할 때도 일어난다. 자신을 믿지 말고, 자신의 머리를 믿지 말라. 후배님이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피곤하고 바쁜 당신의 머리는 무엇을 잊어버릴지 모른다. 항상 프로토콜을 확인하도록.


그리고 나는 언제 교수님께 혼나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주로 랩 미팅 때 데이터가 맘에 안 들 때- 해석이 맘에 들지 않거나, 결과가 현재 가설과 반대될 때 화를 내시더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실험실 nn연차 된 라떼는 교수님께서 화를 내셔도 묵묵히 들으며 죄송하다고 하고 얼른 교수님이 맞다며 실험을 다시 한다고 하거나, 내가 잘못 생각했다, 교수님 생각이 맞으시다, 예예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네네봇이 된다. 그러면 5분 안에 화를 그치신다. 슬프게도 나는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은 갖다 버린 지 오래인데, 데이터 해석의 차이로 교수님과 싸워봤자 교신저자는 교수님이고 연구비도 교수님에게서 나왔으므로 어차피 교수님이 이기기 때문이다. 그거 아는가? 나의 근로 계약서에 나는 '을'도 아니고 '병'이다(학교가 갑, 교수가 을, 내가 병).  

이렇게만 얘기하면 엄청나게 불합리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랩 미팅 시간에 교수님이 지적하시는 건 경험상 거의 다 맞는 말씀이다. 당시에는 나의 주장과 정 반대라 울컥- 해서 내 주장을 내세워 보고 싸워도 보고 하다가 결국 뜻을 꺾고(나는 '병'이니깐)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 그래서 이렇게 하자고 하셨구나 할 때가 많더라. 교수가 거저 되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성격과는 별개로).

ps. 교수님 당신이 지난번에 하신 말씀을 뒤집으실 땐 예외이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마세요 교수님. 그리고 기억 안 나는 척도 금지예요. 제발요.


 그런데, 내가 한 잘못에 비해 이건 좀 심한데 싶을 정도로 과하게 혼날 때가 있다. 그건, 필시 교수님이 뭔가 다른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교수님이 컴퓨터 구매 문제로 고객센터와 통화하다가 화가 난 상태로 (통화를 미팅 중에 하셨다. 고객센터 직원에게도 우아하게 화내셨다) 미팅을 진행하다가 그 불똥을 내가 다 맞은 적이 있다. 하도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났다. 내가 잘못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엔 이상한 교수님이 많다. 교수는 실적으로 채용할 뿐, 인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 하는 교수도 봤고, 겉으론 온화한 척 하지만 뒤로 학생들을 조종해서 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교수도 봤다. 애들 노는 꼴 못 본다고 아침 8시, 저녁 8시 - 하루 2번 미팅을 하는 교수님도 계셨다. 물론,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리스마 있게 데이터와 학생들을 조지지만, 쓸데없는 화는 안 내시는 이성의 정석인 교수님도 계시고, 젠틀하게 혼내시는 교수님도 계시고, 십 년 내내 화 한번 안 내셨던 라떼의 지도교수님 같은 천사 교수님도 계신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수님과 나와의 케미는 케바케이고, 내가 오늘 혼난다고 다른 데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라떼가 지도교수님을 떠나 첫 번째 만난 교수님은 나를 싫어하다 못해 다른 학생을 통해 감시를 시켰을 정도인데, 두 번째 옮긴 실험실에서 나는 교수님의 페르소나이며 실험실의 에이스이자 해결사이다.

여러분, 교수님과 당신의 성향이 맞지 않는다면 오래 망설이지 말길 바란다. 단, 당신이 최선을 다 한 후여야 한다. 당신이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알아봐 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지도 교수가  자격이 없다. 선택은 교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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