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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yJee Oct 17. 2022

대학원 꼰대의 세상 사는 이야기

포닥으로 산다는 것

포닥. 일명 포스트닥터, 박사 후 연구원.

박사 졸업자들이 교수 또는 연구소의 책임연구원 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실험 스킬과 연구를 갈고닦아 높은 점수의 논문을 쓰고자 애쓰는 과정이다. 다른 말로 교수가 되고 싶은 자들 및 갈데없는 박사 졸업자들의 자발적인 노예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자발적 노예인 것이다.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자발적 노예에서 벗어나는 길은 교수가 되거나 이 업계에서 떠나는 길 밖에 없는데, 배운 게 이것밖에 없는 중생은 입에 풀칠하고 노후자금도 저축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상급자로 올라가려면, 모든 집단이 그러하듯이 처음부터 눈에 띄고 앞서 나가야 하는데, 높은 점수-흔히 뉴스에 나올만한 네이처, 사이언스 (30-40점이다) 급의 논문을 한두 편 쓰면 된다.

이것은 국내에서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포닥을 하려고 한다. 그럼 영어와 논문 두 가지가 해결되므로 '해외 포닥-한국 컴백-조교수'가 정도로 여겨진다.


이 자발적 노예도 해외 포닥을 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고, 사실 교수에 큰 뜻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포스트닥터'라는 것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임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포닥들과 마음가짐이 조금 다르다. 이른바 '승진=교수' 욕구가 없기 때문에 일단,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시키는 일만 잘하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시키지 않은 일은 덤비지 말자는 뜻이다.


교수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본인 휘하 포닥과 및 학생들은 (결국은 연구원 모두라는 소리) 항상 연구만을 생각해야 하고 연구를 위해서 더 열심히- 이른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수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아무리 많은걸 보여줘도 사람 욕심이 그렇듯 부족하다고 여기더란 말이다. 항상 다음은? 다음은? 하고 얘기하더라. 나는 내 몸이 부서져라 하고도 일해봤지만 별로 좋은 꼴을 못 봤다. 앞에서는 칭찬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 없이 다 교수만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나서서 일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님에겐 부족한건 마찬가지다.


교수가 되지 않는 이상 나에게는 승진할 자리도 없기 때문에(연구교수는 정교수가 아니다. 연구교수나 포닥이나 그게 그거다. 조교수 이상, 책임연구원 이상만 쳐주겠다) 이것을 직업의 하나로 여기기로 했다. 따라서 나는 페이스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한주에 하나씩 시킨 일만 한다. 내가 앞서서 더 많이 해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나는 성공률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보통은 한주에 두세 개씩 하고도 실패한 결과를 많이 가져온다. 나는 한주에 최대 실험 두 개, 나머지 시간은 분석에 투자한다. 물리적으로 두 개 이상의 실험은 너무 스케줄이 빡빡해 실수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그럼 다 망하는 거다) 분석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높은 성공률은 스케줄 관리와 10년간 쌓인 노하우 덕이다.


그리고, 나는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킨다. 웬만하면 9시 출근 6시 퇴근이다. 이건, 내 컨디션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포닥을 직업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고집 같은 것이다. 의외로 늦게까지 남아서 연구해야 열심히 하는 줄 아는 교수들이 많다. 거기에 대한 반항이랄까. 나는 계약된 만큼만 일하는 직장이다-라는. 늙으면 야근하기 힘들다. 일주일 못 버틴다. 대신 6시 퇴근을 위해 하루 9시간을 타이머 들고 얼마나 종종거리면서 뛰어다니는지, 9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머리에 쥐가 나도록 운용하고 있는지 교수님은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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