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구분하기
우리는 다들 세상 속에서 참 다양한 갈등들을 겪는다. 그 안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누구 잘못인지 상관없이 일단은 크게 화를 내기도 하고, 다행히 남에겐 들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처도 받고, 그런 갈등을 유발하거나 혹은 제대로 상대를 단죄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도 하고, 정 어쩔 수 없을 때는 친구를 만나 상대에 대한 험담도 한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다들 그렇게 하루를 버텨낸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과 만나는 것과 갈등을 겪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일이기에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갈등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일어난 갈등을 어떻게 하면 잘 처리를 해낼까를 제대로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갈등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갈등을 잘 처리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마도 도대체 그 갈등이 왜 일어났을까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이후 아무리 좋은 해결책을 적용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거나 심할 경우 오히려 갈등이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로운 남자를 사귀게 된 여자가, 예전부터 그 남자를 짝사랑해 왔던 다른 여자가 자신에게 보이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잘못해석해서, 요즘 저 여자가 혼자라서 외로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자기 딴에서는 평소에 괜찮다고 생각되던 다른 남자를 소개해 주려는 해결책을 찾은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럴 경우 나름 마음을 써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를 어떻게 보고 저딴 남자를 소개해주냐'라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작점일 수밖에 없다.
갈등의 원인을 파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살펴야 할 점은 바로 지금 일어난 갈등의 원인이 '나'로 인해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상대'의 고유한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많은 갈등이 그저 '상대의 문제'로 인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가 나는 멀쩡한데 상대가 늘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우리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편이기 때문에 자신이 갈등의 원인일 경우엔 그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그날 상대가 가만히 있는 자신을 건든 것이라고 여기기 마련이다.
평소엔 그냥 넘길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이 오늘 내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터졌을 때,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있다고 여긴다. 분명히 어제까지는 듣고 웃으며 넘겼던 말인데 오늘은 갑자기 화를 내는 냈지만 결론은 그렇다. 물론 분명히 상대의 잘못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상대방의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아주 쉽게 결론 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딱히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문제는 내가 그 상대방의 입장에 놓였을 때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매일 자연스럽게 건네던 말을 오늘도 했는데 상대가 갑자기 화를 내는 경우이다. 이때 우리는 흔히 '봉변'을 당했다고 느끼지만, 사실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대 놓고 따질 수도 없다.
내 잘못이 다는 아닌데, 상대방은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자신을 화나게 한 모든 원인이라고 몰아붙인다. 그것이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내 말이나 행동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기에 아주 애매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풀어내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화가 난 상태이기에 다시 말을 걸어봐야 더 화를 돋울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친구나 가족에게 자신이 겪은 봉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겪은 갈등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럼 우리는 왜 가끔 봉변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 이 봉변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꽤나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나에 대한 화나 짜증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바로 그 사람의 어떤 성격적 배경에서 오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그것은 '타고난 못됨'이나 '성장 과정에서의 불안정함'이 둘로부터 기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둘은 전혀 다른 원인이며 그래서 전혀 다르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구분하기 쉬운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둘 모두 분노, 짜증, 신경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한 가지 인정을 하고 시작해야 한다. 나는 상대의 성격 중에서 못됨과 불안함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인정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안함을 못됨으로 착각하고 해석한 채 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못됨을 불안함으로 착각해서 거리를 둬야 할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다가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못된 사람들은 자신이 못되다는 것을 남들이 아는 것이 사회적 평판에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최대한 못되지 않게 보이려고 평소엔 꽤나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못되지 않다고 착각할 경우가 꽤나 많다.
못됨과 불안함의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자주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불안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고, 그것은 숨길 수 없기에 계속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함이 너무 커서 사회적 평판을 신경 쓸 만큼의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헷갈릴 일이 없다. 더군다나 일관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해서 혹시나 그 사람과 문제가 생겨도 다 내 편을 들어준다.
하지만 못된 사람들의 경우엔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도 꽤나 많다. 그러니까 특정한 몇몇에게만 못된 것이다. 나는 상처받고 힘든데 주변 다른 사람들과는 멀쩡하게 잘 지낸다. 이런 상황이 되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혹시 내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남들은 잘 지내는데 자기 자신만 못 지내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인데, 이 선택이 못됨과 불안함을 구분해 내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못된 사람들이 뿜어내는 부정적 감정들은 반드시 선택적이다. 못된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나눈 후 강자에게는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부정적 감정을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자신이 기분에 따라 마음껏 감정을 발산한다. 그래서 자신이 기분이 좋은 날엔 잘해주기도 하다가 어느 날 기분이 상하면 갑자기 돌변해서 화나 짜증을 낸다. 그러니까 자신의 부정적 감정의 발산 기준이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못됐고, 그 사람의 기준에서 내가 약자라면 나는 그 사람의 그런 감정 변화의 피해자가 되게 된다. 하지만 가끔 자신이 기분이 좋을 때 잘해주니까 한번 당해놓고도 또 슬슬 근처로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또 상처를 입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 먹고 또 다가갔다가 상처 입기를 반복하게 된다.
불안정한 사람들의 그런 부정적 반응은 못된 사람과는 달리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 배경 중 어떠한 일로 인해서 생겨난 서투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거칠게 느껴지면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본질적 특징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누군가의 못됨은 보통 과도한 욕망으로부터 발생한다. 돈이나 성공과 같은 흔한 욕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이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무엇이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나보다 못하다고 느낀 상대가 자신보다 많이 갖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그나마 자신보다 잘 나서 많이 갖는 사람은 일단 참는다. 강자이기 때문에 겉으로라도 축하해 준다. 하지만 자신보다 못났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더 많이 갖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질투심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불만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무튼 그때는 그 특유의 못됨이 마구 터져 나온다.
그래서 못된 사람을 상대하는 유일한 요령은 바로 평소에 늘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자신보다 잘났냐 못났냐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한다. 친해지면 바로 그런 비교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일정 정도 이상으로 친해지면 안 된다. 혹은 확실히 잘나서 상대가 자신에게 질투심을커녕 평소에 존경심을 품게 만들 수 있다면 친하게 지내도 된다.
반면에 불안정한 사람은 두 가지 해결책이 있다. 하나는 못된 사람과 상대하듯이 거리를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그 불안정함의 원인을 이해해 주는 방법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해볼 만한 것은, 일단 이해만 해줄 수 있게 되면 꽤나 괜찮은 사람을 하나 얻을 수 있게 된다.
그 특유의 불안정함으로 인해서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면에서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불안정함이 못됨과 함께 있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너무 못돼서 사람을 가라지 않고 부정적 감정이 튀어나오는 사람을 그냥 단순히 불안정하다고 착각해서 다가가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부정적 기운에 잡혀 먹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가진 불안정함을 많은 노력을 해서 풀어내고 나니 특유의 못됨이 드러날 경우 이미 상대와 깊게 관여가 되어서 자신의 삶이 아주 곤란해질 수도 있다.
불안정함과 못됨 모두 분노나 짜증과 같은 감정을 발산한다. 하지만 불안정한 사람은 최소한 다른 사람을 무시, 혐오, 경멸하지 않는다. 타인을 내려 까는 것은 오직 못된 사람들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러니까 불안정한 사람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최소한 다른 사람을 깔아보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점이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이다. 그러니까 평소 약자에게 대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혹은 아주 가끔 드러나는 그 특유의 남의 무시하는 표정을 잘 살필 수 있다면 이 둘을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불안정한 사람들은 성장과정 속에서 어떠한 이유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하고,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누군가와 문제가 생겨도 자신이 명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서 그 갈등을 푸는 것도 몹시 서투르다. 그러니까 오히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생겨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원래 서투르면 그것을 안 하면 되는데 자기 딴에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자꾸 시도하다가 실수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못된 사람들은 사람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을 훨씬 더 좋아한다. 돈, 성공, 관심, 인기 등이 주 관심 대상이다. 특히 관심과 인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마치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데, 그들의 관심은 전혀 상대방에 있지 않다. 오직 그들의 관심과 인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실상 그것은 돈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관심과 인기가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다.
팬들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자신의 팬에게 감사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들이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이나 자신에게 쏠린 관심만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팬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그런 호구인 팬들을 비웃거나 무시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사실 못됨과 불안정함을 구분하고 적절히 대응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못됨을 강함으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놀랍게도 못됨을 매력으로 느낀다. 약자를 만나면 함부로 하는 모습을 강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남자 신드롬이 생긴다.
이 경우엔 자기 자신 안에도 못됨의 본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끌리는 것이다. 자신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못하는 것을 해내는 것을 보고 속이 시원하거나 따라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착각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는 착하지 않다. 그저 약자일 뿐이다. 그럼 강해지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두 번째는 못됨을 불안정함으로 오해해 연민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호구가 되어 이용만 당하고 비웃음만 산다.
이 경우는 반대로 너무 착해서 타인을 모두 자신처럼 착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못됨을 불안정함으로 오해석 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그렇게 착하지 않다. 빨리 그걸 깨달아야 한다.
학교나 직장 그리고 가족처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인간관계 속에서 아마도 주변에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하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다들 있을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이 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불안정한 것이지만 구분해도 많은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해서 갈등이 있어났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더 나을지를 결정하기 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