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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29. 2022

두 번째 화살

두 번째 화살은 어떻게 피해야 할까?

잡아함경이란 불교 경전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연이어 화살을 맞지 마라. 어리석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고,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 부처님에게 일반 사람들과 불교도와의 차이가 무엇이냐를 묻자 부처님이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두 번째 화살의 존재 유무이다."


같은 내용에 관한 다른 이야기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이미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지만, 그냥 설명해 본다. 여기에서 첫 번째 화살은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우연한 사건'들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들이 모두 화살처럼 아픈 것은 아니다. 당연히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이 중에서 사고를 당했거나, 사기를 당했거나, 직장에서 잘렸거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과 같은 일들은 불운으로 화살처럼 우리에게 꽂힌다. 그때마다 우리는 원하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누가 봐도 나쁜 일만이 화살이 되는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화살처럼 꽂히는 경험을 최소한 한 번쯤은 해봤다. 외모, 성격, 능력, 상황, 태생 등에 대한 타인들의 무심한 평가들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상대가 꼭 화살을 날린 것 같지는 않은데도 우리는 화살에 꽂히고 말았다.


물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날아오는 화살들이 멈추거나 날아오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도 단언을 하셨다. 삶에서 첫 번째 화살은 결코 피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진짜 문제는 두 번째 화살이다. 우리의 평소 믿음과 달리 원인이 되는 첫 번째 화살이 아닌 이 두 번째 화살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된다. 그러니까 나에게 일어난 어떤 불운한 사건들 그 자체보다 그 후 일어나는 연쇄적 반응이 훨씬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이미 한번 화살을 맞아서 몹시 고통스러운 상처에 두 번째 화살이 연이어 꽂히게 되면 그 아픔은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 때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난 후 내가 보여줄 반응을 의미한다.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해석하는 내 마음이 바로 두 번째 화살이 된다.


누군가 나에게 '못 생겼다'라는 말을 했을 때 우리는 곧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첫 번째 화살이다. 내가 전혀 궁금하지 않고, 그래서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 종류의, 나를 평가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연이어 발사되는 두 번째 화살은 바로 그런 말을 하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더해서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외모에 대한 비참함으로 인해 내가 스스로에게 날리게 되는 화살이다. 상대방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멸감, 이 두 가지는 우리를 엄청난 부정적 감정 상태에 빠뜨리고 만다. 


그 화살은 낮에 있었던 기분 나쁜 감정을 토로하며 친구에게 공감을 바라고 말을 했을 때 친구로부터 "사실 그 사람이 너를 기분 나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 그저 자기가 느끼는 대로 별생각 없이 말했을 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 더욱 깊숙이 박혀온다.


한번 생각해보자. 누군가 내 외모에 대해 나쁜 평가를 했다는 사실이 더 큰 기분 나쁜 감정을 일으킬까, 아니면 그런 말을 한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큰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당연히 후자이다. 사실 누가 나에게 듣기 싫은 말을 했을 때 잠깐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고 새롭게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기분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째 화살을 만들어 내며 그렇게 스쳐 지나갈 사건을 손에 꼭 쥐고는 보내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두 번째 화살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진다.


일단 두 번째 화살로 만들어버리게 되면 그것은 끝없이 새로운 기분 나쁜 감정들을 만들어 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분 나쁜 감정을 만들어 내는 무한의 원료'가 되어 내 안에 완전히 고정되어 버리고 만다. 1년이 지나도, 심지어 10년이 지나도 그 사건은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너무 오랜 시간 담고 있게 되면 그것은 마치 구구단처럼 완전히 새겨져서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다. 


그 사이 그 말을 한 상대를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고, 가끔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떠올라서 첫 번째 화살을 맞은 순간의 기억이 방금 일어난 일처럼 현신한다.


매일 같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사부의 해친 악당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20년간 수련을 한 제자는 20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모두 복수만을 위해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우리는 복수의 순간을 속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사자는 복수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또한 그가 복수 후에 정말로 원하던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저 보통 사람들인지라 두 번째 화살을 쏘지 않기는 무척 힘들다. 아무리 좋은 말도 실천이 불가능하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두 번째 화살을 쏘면서, 그것이 두 번째 화살임을 스스로 알아채는 것이다.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거의 대부분의 나쁜 감정들은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화살로 인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고 계속 머문다면 그것은 스스로 쏘고 있는 두 번째 화살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들이다.


그런데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자기 전 문득 떠오르거나, 새벽에 기분 나쁜 꿈을 꾸고 난 후 깬 직후 생각난,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아닌가?


그것들이 첫 번째 화살이라면 떠올리기도 힘든 기억이 되었겠지만, 두 번째 화살이 되었기에 그렇게 깊고 오랫동안 명확한 형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감정들이 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들은 내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 그 자체로 인한 감정들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감정들이라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들은 결코 첫 번째 화살이 아니라 언제나 두 번째 화살로 인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가능하다면 최대한 자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억지로 두 번째 화살을 날리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할 필요는 없다. 사실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것들이 두 번째 화살로 인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자각만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느끼게 되는 거의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들은 외부의 세계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만들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법이다. 


이것만 어느 정도 되어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던 삶이 꽤나 많이 가벼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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