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관한 두 개의 측면
누군가 암에 걸렸다면, 그 사람의 삶은 꽤나 힘들어진다. 그냥 '힘들다' 정도의 표현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그 어떤 종류의 불행보다도 견뎌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암에 걸렸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반복적인 수술과 긴 투병생활을 겪어야 하지만 결국 회복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럴 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아서 서서히 시들어가다가 결국 삶이 끝나기도 한다. 운 좋게 회복이 된 사람들 중에서조차 '재발'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져 별 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일단 암에 걸리게 되면 두 가지 종류의 힘듦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는 통증 그 자체와 치료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움, 아픈 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문제, 치료비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입는 문제 등의 물리적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치료기간 내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야 하고, 일상이 무너지면서 삶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가 되어버리고, 신체적 불편함으로 인해 자신의 병시중을 들어야 하는 가족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등의 정신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종류의 힘듦 중 어떤 것이 더 견디기 힘들까? 물리적 고통일까 아니면 정신적 고통일까? 답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 이런 두 가지 가정을 해보자.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100% 완치가 가능한 암에 걸렸지만 몇 년간 힘든 치료 과정을 겪어야 하는 삶과, 암에 걸리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자신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커다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 이 둘 중에서 어떤 삶이 고통스러울까?
사람마다 그 답이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물리적 고통이, 어떤 사람은 정신적 고통이, 어떤 사람은 둘 모두 견디기 힘들다고 할 것이다. 여기엔 딱히 정답이 없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둘 모두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버텨낼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이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바로 충분한 '성장'이다.
성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성장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기본적으로는 성장은 과거보다 뭔가 더 나아진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나아진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과거보다 더 '강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상관없이 강해졌다면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암에 걸렸을 때 그것을 이겨내려면 강한 육체와 강한 정신력, 이 둘 모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장할 수 있을까?
단순히 생각해보자. 성장하는 것 그 자체가 '더 강해지는 것'을 의미하니 어떤 것이든 강해질 수만 있다면 성장하는 것이 된다.
운동을 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 다양한 지식을 쌓는 것, 가능하면 많은 능력을 갖추는 것 등이 물리적 성장의 대상이 될만하다. 더해서 많은 돈을 버는 것, 강한 권력을 가지는 것, 사회적 명성을 얻는 것 등도 충분히 성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돈, 권력, 명성 등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성장이 아닌 오히려 퇴보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장이 '강해지는 것'의 의미라면 돈, 권력, 명성은 분명히 강해지는 것이기에 성장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많은 돈과 강한 권력과 사회적 명성은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은 뭔가를 갖게 되면 그것을 휘두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존재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개인적 성향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크게 베푸는 삶을 사는 것,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다수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것, 인류사적 업적을 남겨서 명성을 얻는 것은 결코 나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좋은 것이다. 단순한 예로 우리나라의 과거 세종대왕을 떠올리면 된다. 부와 권력과 명성을 모두 가진 분이 얼마나 좋은 영향력을 후대에 끼칠 수 있었던가?
그렇다면 왜 이런 것들은 성장에 방해되는 듯 여겨지게 될까? 슬프게도 여기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평소 '성장'이란 단어를 쓸 때 제일 많이 앞에 붙는 수식어는 바로 '정신적' 성장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장이란 말 자체를 정신적으로 강해진 상태로 가정하는 오래된 관습이 있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분명히 물리적으로도 성장하는데, 흔히 쓰이는 성장이란 단어는 왜 이렇게 정신적인 영역에만 적용될까? 왜 물리적 성장은 성장이라고 불리지 않고 개발, 성취, 달성, 확장 등으로 표현될까?
그것은 바로 삶의 어느 시점에 어쩔 수 없이 물리적 성장의 한계점에 부딪힌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어서 정신적 성장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물리적 성장의 한계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험한다. 그 대다수 중에서 일부가 물리적 성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 채 새로운 성장의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신적 성장의 길이다.
결국 위기가 우리를 성장시키고,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좌절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하지만 이런 경로를 통해 정신적 성장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서 최초의 자신의 좌절감을 불러온 '물리적 성장의 한계'를 부정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유소유'의 삶이 아닌 '무소유'의 삶에 끌리는 것이다. 당연하다. 물리적 성장을 부정하면 할수록 자신이 새롭게 들어 선 정신적 성장의 길이 훨씬 더 만족스럽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은 아예 두 갈래의 길로 완전히 갈려 버렸다. 사는데 큰 문제가 없거나 있더라도 딱히 기회가 없어서 계속 물리적 성장 속에서 살아가거나 이와는 달리 아예 물리적 성장에 대한 무의미함을 설명하며 정신적인 성장의 길로만 가는 사람들로 나뉜 것이다.
이 와중에서 가끔 힘든 사람들은 정신적 성장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하는 물리적 성장의 무의미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자신은 딱히 별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옆에서 물리적 성장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묘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거부감이 이해는 충분히 간다. 누가 한 번쯤 '도를 아십니까?' 라를 말을 안 들어봤을까? 이것은 물리적 성장과 달리 정신적 성장은 딱히 정확한 측정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사람의 물리적 성장인 근력, 지위, 돈, 능력 등이 도달한 단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정신적 성장 상태는 도대체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정신적 성장인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세뇌 상태인지 구분할 방법이 거의 없다.
이런 문제로 인해 물리적 성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신적 성장에 무관심한 채 죽는 그날까지 물리적 성장을 추구하게 되고 반대로 물리적 성장의 한계로 인해 큰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물리적 성장을 부정하면서 정신적 성장의 길만 가려고 한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사실 충분히 능력만 된다면 삶은 오직 물리적 성장만을 추구해도 별 상관은 없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영역이든 상관없다는 뜻이다. 단지 여기엔 본질적 문제가 있다. 육체적 강함은 어느 시기가 되면 무조건 꺾일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물론 이럴 때 조차도 높은 지적 수준을 이용해 죽는 날까지 지식을 쌓는 일을 하고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로 인해서 사람은 삶의 어느 시점엔 어쩔 수 없이 정신적 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적 과정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정신적 성장을 부정하면서 살아온 탓에, 어쩌면 잘나서 너무 늦게 그 길을 가게 된 탓에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신적 성장의 길에 접어든 사람도 자신의 길에 대해서 유심히 살펴야 한다. 너무 높이 달려서 먹을 수 없게 된 여우가 저건 '신포도가 분명해'라고 말하며 떠나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이 더 이상 물리적 성장을 하지 못하는 좌절감의 대안으로 정신적 성장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믿는 대로 정말로 제대로 된 정신적 성장의 길을 가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되지 못한 길은 바로 추종을 통해서 나타난다.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는데 무엇인가를 추종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딱히 '도를 알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든 틀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울 때 가장 강해진다. 그리고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면 물리적 성장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질 것이다. 대신 아예 무관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