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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Aug 02. 2021

무한에 관하여(1부)

part3. 수학이란 무엇인가?(2)

5. 무한이란 대체 무엇인가?

 방금도 언급했듯, 무한에 의한 증명이 가능하다고 했다. 무한 중에서도 집합으로 담을 수 있는 무한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특정 규칙을 가지는 무한의 경우는 집합의 원소로 담을 수 있다. 비록 개수를 규명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힐베르트의 유한에서 이 규명 가능한 무한을 포함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이 의식 안으로 담을 수 있는 무한도 유한의 범주로 포함한다면, 초한 귀납법에 의한 페아노 공리계(자연수 체계) 역시 유한으로 증명 가능하다. (물론 이 정확한 의미는 힐베르트만 알고 있으니 더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자, 이제 이성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자연수 체계 이외의 다른 공리계에서도 똑같이 증명 가능하다. 따라서 수학의 기초가 되는 집합론(ZFC 공리계라고 한다.) 역시 공리 자체는 증명 불가능한 참이다. 이 공리계 안에서의 공리 중 무한에 대한 공리도 존재한다. 즉, 우리 이성에서의 무한에 대한 관념을 담아 놓은 명제가 있다는 의미다. 물론 수학적 기호로 규명되어 있지만, 언어로 풀어서 서술하겠다.


 “무한 집합이란, 자신의 진 부분집합과 일대일 대응이 되는 집합이다.”


 여기서 진 부분집합은 자기 자신과 같은 집합을 제외한 부분집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2}라는 집합에서 진 부분집합은 공집합, {1}, {2}이다. 무한 집합은 이 진 부분집합 안의 원소의 개수와 전체 집합의 원소의 개수가 일대일 대응이 되는 집합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부분과 전체가 대응되는 관계를 무한이라고 한다.


6. 직관과 이성을 규명하는 공리들

 집합은 직관과 사고, 이성의 대상을 규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ZFC 공리계 안의 공리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사고의 모순들을 직접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물론 공리들이(이성들이) 참이라는 전재고, 이 전재를 부정하는 방법은 이성의 영역 밖의 일이다.

 이제 우리를 괴롭혔던 수많은 문장, 모순들이 왜 모순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전에 우리는 2가지 공리에 대해 알고 가야 한다.


 1) 무한 공리: x∪{x}=S(x) (x는 집합)이라고 하자. 공집합을 원소로 가지고, x를 원소로 가진다면, S(x)를 원소로 가지는 집합 I가 존재한다.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 공집합을 Ø이라 하자.

 Ø∪{Ø}={Ø}=S(Ø)이다.

 {Ø}∪{{Ø}}={Ø, {Ø}}=S({Ø})이다.

 이런 식으로 공집합으로부터, 새로운 집합을 계속 규명할 수 있다. 이를 무한 공리라고 하며, 이 공리를 통해 우리는 자연수를 정의할 수 있다. S라는 함수가 새로운 집합을 규명하는 규칙이 되고, 이를 통해 수학적 귀납법이나, 자연수의 무한함을 규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임의로 정한 규칙이 아니다. x 집합을 규명하면, x를 다시 원소로 포함하는 집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리의 관념에서 출발한 공리이다. 즉, 이성적, 선험적 명제인 셈이다.


 2) 정칙성 공리: 공집합이 아닌 집합은 자신과 서로소인 원소를 가진다.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 {x}=y라 하자.

 {x}는 집합이고, x는 집합 {x}의 원소이다. 그리고 y는 집합{x}이기도 하지만, y라는 원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집합 y이자, {x}는 원소 x는 가지지만, 원소 y는 가지지 않는다. {x}의 원소는 x 뿐이니까.

 정리하면, 집합이 다시 원소로 취급되면, 취급된 원소는 기존의 집합에 들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는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반대의 과정도 재밌다. 취급된 원소를 다시 집합으로 취급한다. 취급한 집합에도 원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다시 집합으로 취급한다. 이를 반복하면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 집합, 즉 공집합이 된다.     

 이 외에도 8가지 공리가 더 있지만, 앞서 언급했던 철학적 문장을 분석하기에는 2개면 충분하다.


7. 철학적 문장에 대한 분석.

 이제,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1) 나는 내 생각을 의심한다.

 이 문장을 자세히 보자. “나”라는 단어 안에 “내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나는 내 생각을 의심한다.”라는 문장이자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 어떻게 될까? 결국, 해당 문장까지 의심하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무한 집합의 조건과 유사하다.     

 2)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문장”에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이 포함된다. 이는 무한 집합의 조건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것은 정칙성 공리와는 어긋나는 문장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될까? 우리가 이 문장을 메타적으로 판단할 때, 참과 거짓을 판별하게 된다. 즉,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은 참일까? 거짓일까?

 단순히 전체가 부분에 대응되는 것을 넘어, 우리의 메타적 사고, 즉 참 거짓을 판별하는 사고와도 일대일 대응이 되는 명제다. 이는 정칙성 공리에 위배되는 형태이며 이로 인해 참도 거짓도 밝힐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실제 참이라고 해도 거짓이라고 해도 참과 거짓이 순환하게 된다. 이를 거짓말쟁이 문장이라고 한다.)

 실제 이 문장으로 우리의 의식체계의 진위 판별이 가능한가라는 물음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언어를 통해서 이를 증명하려고 하다 보니, 단어의 포함관계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되지 않았고, 이성 체계에 모순되는 형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상대주의

 상대주의는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의미다. 상대성 안에 포함된 “모든 진리”에서 “절대적 진리는 존재한다.”라는 상대주의의 반대 주장 역시 포함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역시 거짓말쟁이 문장과 같은 형태다. 상대주의라는 것을 판단할 때, 우리는 “상대주의”는 참이라고 무의식 중에 판단을 놓는다. 바꿔 말하면, 상대주의를 하나의 절대적 진리로 무의식 중에 판단한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진리는 절대적이다.”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2) 번과 무엇이 다른가?


4) 완전한 자유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란 억압이 없는 상태이다. 우리가 체감하는 자유를 넘어 의식적으로 완전한 자유가 존재할까? 인간이 정해진 운명, 자유의지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와닿지 않는다면 잠시, 과학의 힘을 빌리자. 우리가 우주의 비밀을 풀어, 우주의 시작, 그리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안에 포함된 인간의 미래도, 그리고 나의 미래도. 그럼 우리에게 자유란 존재할까? 결정된 미래를 걸어가는 것이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자. 인간은 자유를 원한다. 그런데 자유를 원한다는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이것 역시 인간이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욕망(이성, 선험적 명제)이 아닌가? “자유를 원한다.”라는 생각이 또 하나의 억압이 되어 완전한 자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가 자유롭기를 원하는 마음을 품는 그 순간부터 완전한 자유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이제 다시 묻겠다. 자유란 무엇일까? 


5) 신: 절대적 선(참)의 존재.

 신이라는 정의 자체가 거짓말쟁이 문장과는 반대되는 명제다. 어떻게 반대되는지 잠시 예를 들어보겠다.

 이 문장은 참이다.

 해당 문장을 메타적으로 진위 판별하면 “‘이 문장은 참이다.’라 문장은 참이다.”가 된다. 이를 거짓이라고 판별하면 문장은 거짓말쟁이 문장처럼 모순이 된다.

 절대적 선의 존재를 만들고 이것이 선이냐고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전에, “선”이 무엇인지부터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이를 다시 신에게로 묻는다면 앞서 언급한 문장처럼 도돌이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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