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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May 23. 2023

산골오지, 진짜 놀이터가 되다

시골성장기 3

책바다에 빠져 혼자 잘 놀던 중,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중 '놀이'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그 범위가 우리나라의 놀이터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관리하고 있는지까지 뻗어나갔고 그렇게 전국에 있는 수많은 놀이터들을 검색하고 갈 수 있는 곳은 틈틈히 다니기도 하면서 유럽의 놀이터에 관련된 책까지 섭렵하게된 나는 아이들을 1년만 기관에 보내지 말고 가정보육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한 군데만 파자' 딱 한군데의 놀이터만 찾아서 거기서 1년동안 아이들을 키워보자고 계획을 세운 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쯤되는 거리에 있는 읍내의 놀이터를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100일쯤 지난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면 분유 먹고 낮잠도 잘 자 주었기에 원없이 읽고싶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첫째와 둘째는 놀이터에 자유로이 풀어둔 채. 첫째 때는 놀이터에 가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조심시키기에 열을 올렸다면 둘째부터는 아주 위험한 환경이 아닌 이상, 스스로 탐색하고 조절할 수 있게 두는 편이다. 워낙 집 앞 찻길에서 차들이 다니지 않을 때 신나게 놀아봐서인지 놀이터에서 제 몸 하나쯤은 잘 다룰 수 있게 된 녀석들이 기특했다.


자주 드나들다보니 6살 큰아들이 그 넓은 공원의 지리를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두 발 자전거도 그 곳에서 떼었고, 7살부터는 놀이터 뒤편에 있는 캠핑존을 지나 더 멀리 있는 박물관 정원까지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엄마와 잠시잠깐 떨어질 수 있는 그 시간이 아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고,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 믿음도 있어서 다녀와보라고 했다. 마음 속으로는 몇 분이 한 시간같이 길게 느껴질만큼 불안하기도 했는데 그 불안은 온전히 엄마가 안고가야하는 훈련의 시간이기도 하다.


집 앞에 놀이터가 전무한 위험한 시골이라는 불만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 약간의 오고가는 시간과 돈을 들여서 다녔던 놀이터는 참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1년을 놀이터에서 충만하게 성장했다. 놀이터에서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안전한 장소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었다는 안도감에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고 책 읽을 수 있는 내 시간도 확보가 되었음에 그 어떤 때보다도 만족감이 컸다. 그렇게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에 들어오면 씻고 책 읽다가 꿈나라로 가는 녀석들을 보면서 엄마로서의 자존감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음을 느꼈다.


뻔하고 그닥 놀거리가 없는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놀이를 펼쳐나간다. 뛰다 지치면 멀찍이 떨어져있는 나무 그늘 아래로 달려가 몸을 웅크린 채 개미들의 부지런함을 관찰하고, 여름철에는 딱정벌레를 찾느라 혈안이 된다. 가을엔 도토리깍지를 주워 주머니 가득 담아오고, 보석이라며 돌멩이들은 또 왜 그리 수집을 해오는지. 뻔한 놀이터에서 1년을 보낸 우리는 드디어 집 근처에서도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첫째가 7살이 되던 해에는 보다 대범해져서는 집 앞 언덕길에서 헬맷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내달린다던지, 길바닥에 분필로 사방치기를 그려놓고 할머니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시는 걸 즐긴다던지, 회관 앞 계단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그마저도 시들해질 때쯤이면 밭에 들어가 흙놀이를 한다. 시골살이 4년만에 위험했던 온동네가 우리의 편안한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을 집 앞 길가에서 놀게하는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가끔 염려의 눈길과 말을 보태는 동네어르신들도 계신다. 그럼에도 인적 드문 시골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여기며 지루하고 활기없는 일상을 보내게 하고싶지 않았다. 시골의 대자연을 사는 동안 맘껏 누리게 해주고 싶단 아름다운 욕망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면서 다소 위험하긴 해도 내 보기에 저 정도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웃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건 만지면 안돼! 조심하고! 헬맷꼭쓰고! 거긴 아저씨네 집이니 들어가면 안돼!  등등 아직도 멈출 수 없는 잔소들이 남아있지만 (진짜 어지간해서는 흙탕물에 손을 씻어도 웃으며 관람하는 레벨이 된 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이 곳에서 성장해야 하기에 나의 귀와 눈을 쫑긋 세워 위험신호를 감지하는 노동이 집 안에서 불평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찻길이긴하나 실제로 다니는 차들은 별로 없다는 것도 용기를 더해주는데 한 몫했다. 이젠 아이들이 알아서 차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면 미리 피하기도한다.


무턱대고 안전만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돈 안들이고 너른 앞마당, 그것도 이렇게 스펙타클함을 맛볼 수 있는 길에서 내 몸을 단단히 지키며 놀 수 있다는게 생각해보면 흔치않은 유년시절이다. 그래서 더 돋아나는 추억이 되지않을까 긍정해본다.

"엄마!내가 방금 자전거로 시속 몇키로를 달렸는지 알아?"하고 묻는 큰아들과 나는 7살 작년겨울무렵엔 우리 동네에서 한시간을 걸려 옆동네까지 차들이 다니는 대로변을 자전거투어를 하고 오기도 했다. 아마 대다수는 미쳤다고 할지도 모를 경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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