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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Jun 03. 2023

책 먹는 여우가 부러운

책 먹는 엄마

토요일 아침이니까 내 아이들은 늦잠을 자야한다.

(내 희망사항)

적어도 어제부터 내 맴에 꽂혀있는 책을 읽으려면 아이들이 그래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루틴은 7시30분즈음에 맞춰진 터, 토요일도 어김없이 그 시간에 꾸물럭꾸물럭 몸을 한껏 말아올리다가 일어나고야 만다.


읽던 책을 잠시 소파 한 켠에 치워두고 두 팔 벌려 아이들을 안아준다. 몇 분 간격으로 하나 둘 깨어나는 세 명의 아이들을 순차적으로 안아준다.


어제 큰 아들에게 사준 '자동차세계사100'을 읽어주고는 싶은데 내 책도 읽고싶고...몇 초간 고민을 하다가 2-3가지 코너를 열심히 읽어주고는 다시 내 책을 집어든다. 다행이다. 흐름이 끊기지 않는 에세이들로 엮인 책이라서 아이들이 중간중간 소소한 방해공작을 펼쳐도 읽다가 짜증내지 않을 수 있다는 위안을 한다.


최근 아이들이 재미있게 본 '주토피아'가 책으로 있길래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막내가 그 책을 읽어달란다. 내 책을 읽던 중이라 "잠깐만"했는데 그림에 빠져있는 막내가 안쓰러워 보인다. "엄마랑 읽자" 중간쯤 읽어주고 있으니 첫째와 둘째가 다가와 앉는다. 마지막 가도를 달릴 무렵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혀 기발하지 않은 아이디어지만 나의 책 읽는 시간을 사수하기 위한 꾀라고 해야할까)


"주토피아 영화 '영어버젼'으로 볼꺼면 봐도 돼~" 마치 선심쓰듯 아이들에게 주토피아 (한글자막버젼)를 틀어주었다. 창문을 열었다. 정신까지 시원하게 해줄 태양이 반짝이고 산 속에 희귀종 새들까지 지저귄다. (우리동네는 천연기념물 새들이 살고있어서 1년에 한차례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으러 몇날 며칠을 지내다 가기도 한다)공기마저 상쾌하다. 헌데 이런 날 가만히 앉아 책 좀 읽고싶다고 애들을 저 작은 화면 앞에 방치한다고?


슬금슬금 죄책감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다시 책으로 그 감정을 누르기 시작한다. 괜찮아진다. 귀퉁이를 접고 읽은 문장을 곱씹어주기 위해 돌아가 다시 시선을 고정시키는 걸 보니, 쓸데없는 죄책감이 사라지고 있나보다.어찌하겠는가. 읽는 행위는 이제 내게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린 것을.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 그리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끔은 뭐할라고 도대체 뭐에 쓸라고 이렇게 책을 읽어대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 권을 완독했는데 나의 뇌에 남은 것들이 하나도 없을 때면 (거의 모든 책들이 그러한)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독서기록 어플에 문장수집도 해보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노트에 끄적여 보기도 하지만 필기 속도가 읽는 속도를 쫓아오지 못하니 그것 또한 속상한 일이다. 우째야 한단 말가. 나의 독서행위는 이렇게 쓸모없는 짓이란 말인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얻어내는 귀한 시간에 하는 이 독서가 쓸모없음으로 느껴진다면 앞으로 계속 해나갈 용기마저 사라지는 것인데.


그런 생각에 허우적 거릴 즈음 큰 위안이 되는 문장을 만났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도대체 왜 글을 읽는단 말인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말한 "문학적 건망증"인데 30년간 책을 읽었는데도 기억나는 책이 없다며 한탄하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독서에서는 '기억'이 아니라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책을 읽는 동안 기분 좋으면 되었고 다 읽은 뒤 제목조차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어떠한 상황에 맞닥들였을 때 예전과는 다르게 반응하는 나의 변화를 직감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지금은 조금 알기에 그 말에 나 또한 공감한다. 나는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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