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성향 경제칼럼니스트 임주영의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22대총선때 발간•문재인 전 대통령 추천
文 "선거...경제 보는 눈 갖고 싶으면 읽길"
민주당 성향 '굿모닝충청' 연재해 온 저자
경제 설명하며 필요이상 與 비난소재 꺼내
도이치모터스·사무장병원 등 거론하면서
노무현 뇌물의혹·안희정 알선수재 언급 안해
지독한 민주당 편향성 불구, 읽을 가치 있어
'법인세 감세=재벌감세' 치밀하게 근거 제시
핀란드 기본소득은 '중도우파의 실험' 지적
재정정책·통화정책 독자친화적으로 설명
민주당 지지자들을 위한 경제지식 '무기'
"(정치 토론은) 일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고 말이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지지자들이 현장에서 생활공간에서 누가 그런 얘기를 하면 '되지도 않는 소리 하고 있어!(라고 할 수 있다)'. ···중략···(정치 토론은) 생활 현장 안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하러 나가는 토론이다."
'노무현 정부의 황태자' 유시민 작가가 2017년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 7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임주영 경제칼럼니스트(더불어민주당 성향 매체 굿모닝충청에 연재)가 쓴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를 읽으며 유시민 작가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이 책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중도층 지인들을 설득하거나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공격할 때 써먹으라고 만든 '무기'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을 전반적으로 옹호하고 보수정당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이 책이 발행된 것은 올해 제22대 총선을 76일 앞둔 시점(1월 25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올립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책은)지난 정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있었던 중요한 경제이슈들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고, 궁급증이 해소되는 시원함도 있다"라며 "(경제정책은)이처럼 나의 삶과 내 자식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인데도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흔히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세상을 선택할 수 있는 경제를 보는 눈을 갖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라고 밝힙니다.
내용 자체는 너무나 타당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하는 배경에 선거(총선)가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책은 '22대 총선 앞 밥상머리 정치 토론을 위한 민주당 지지자용 경제 부문 지침서'로 보입니다.
글 군데군데 그의 정치성향이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은하게 묻어납니다. 법인세 감면에 반대하면서 "법인이 아니라 사람이 우대받고, 사람이 먼저여야 합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떠오를 겁니다.
저자는 또 필요 이상으로 경제정책 외의 사안들을 끌어 들어 국민의힘과 부정적 이미지를 연관시키려 합니다. 가령 '부정부패가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내용을 서술할 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하거나, 사무장 병원을 불법 운영해 요양 급여를 불법 편취하거나, 뇌물로 퇴직금을 50억원씩 받거나, 잔고증명서를 불법 위조하는 등의 부정부패가 만연하면 우리 GDP의 3~5만큼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라며 굳이 정부·여당 관련 의혹들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면서 민주당 관련 사건은 일절 언급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특가법 상 알선수재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판결받고 징역 1년을 복역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저자는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민주당 지지자들을 독자로 삼아 쓴 책이라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저자의 눈에는 '민주당은 선, 국민의 힘은 악'으로 보이는 듯합니다. "악은 괴담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내지르면 거침없이 달려가면 그만이지만 선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자들로 악이 내지른 거짓들을 하나씩 하나씩 증명해나가야 한다"라고 쓴 부분도 그의 이분법적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마치 "저 악의 무리 국민의힘을 심판해야 한다"는 식으로 쓴 듯하며 이면에 '우리 민주당만이 선이야'라는 독선적 태도도 느껴집니다.
지독한 민주당 편향...그럼에도 읽을 가치 있어
여기까지 이 책의 한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 내용 자체는 읽고 알아둘 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처럼 경제정책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일반적으로 경제신문이 얘기하지 않는 경제정책과 현상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그렇기에 더 가치가 있습니다.
앞서 이 책의 강한 정치 편향성을 꼬집은 데에는 그것으로 인해 이 책의 훌륭한 내용들이 중도층이나 보수정당 지지자들에게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한몫했습니다. 좋은 내용도 많은데 굳이 정파성을 강하게 내세워 독자층을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죠.
이 책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법인세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지금 윤석열정부가 법인세를 깎아주려고 하는데 이건 문제가 많은 부자감세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흔하디 흔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그 논거입니다.
'부자들은 법인을 갖고 있어 세금을 덜 낸다. 법인세를 깎아주는 것은 부자감세다'
이 논리를 반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주변에 소규모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개인사업자가 아닌 법인 등록을 하는 것을 세테크로 활용합니다. 2억원을 번다면 개인사업자인 경우 38%를 내야 하지만 법인이면 9%만 내면 됩니다. 회계사들이 개인사업자가 아닌 법인으로 등록해 사업을 하라는 조언을 하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높은 소득세율을 부과해도 경제적 불평등은 쉬이 줄어들지 않는다. 거의 모든 부자가 법인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간명합니다. 저자가 제시한 일론 머스크(테슬라)와 제프 베이조스(아마존)의 사례를 보면 감이 쉽게 잡힐 겁니다.
일론 머스크는 법인을 활용한 방법으로 2015년에 연방소득세를 겨우 6만8000달러, 2017년에는 6만5000달러밖에 내질 않았습니다. 제프 베이조스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재산이 990억달러나 늘었는데 소득세는 9억7000만달러로 늘어난 재산의 1%도 안 됐습니다.
'한국의 법인세가 외국에 비해 높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저자는 반박합니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 세율은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인 경우에 26.4%(법인세 24%, 지방세 2.4%)입니다. 보통 이를 외국의 법인세와 비교합니다.
그런데 외국에도 지방세가 있습니다. 독일 법인세는 15.8%지만 여기에 추가로 지방 정부에 내는 법인세 14.1%를 포함하면 총법인세는 29.9%가 됩니다.
미국도 법인세 최고세율은 21%지만, 미국 전체 50개 주 중 44개 주에서 추가로 주 법인세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지방정부 법인세는 8.8%이므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기업의 총 법인세는 29.8%인 셈입니다.
핀란드의 기본실험...사실은 중도우파 정부의 실패였다
기본소득의 이면을 알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입니다. 한국에도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내용이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 흔히 알려진 것과 실상은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내용은 이렇습니다.
25~58세 중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매월 560유로(약 76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했습니다. 다만 이들은 실업, 육아, 질병 관련 수당 등 기존의 복지혜택은 일절 받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대신 기존의 실업급여와 달리 기본소득 지급 기간에 다른 소득이 발생해도 기본소득은 그대로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 기본소득을 지급했을 때가 대조군(일반 복지혜택)보다 연간 노동일수가 5일 많았습니다. 고용효과는 사실상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한국의 시민들은 이를 '좌파 정부의 실험 실패'로 많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핀란드 중도 우파 연립정권의 시필레 총리가 진행한 실험이었습니다. 기존의 복지 혜택을 줄이고 노동의 유연성을 증가시켜 시장 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정부의 역할을 줄일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던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 기본소득을 주는 대신 기존의 실업급여, 육아수당, 질병 관련 보험 등을 제공하지 않는 방식의 가능성을 실험해 본 것이죠.
경제학 분석 폄하... 본인 주장 맞는 과거 사례만 제시해 한계 여전
그러나 여전히 저자의 주요 논리 전개 방식에는 의문이 가시질 않습니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특정 조건을 가정해 수치를 산출하는 방식을 평가절하합니다.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무수히 많을 때는 다른 변수는 없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는 '세테리스 패러버스(ceteris paribus)'를 "그냥 마음대로 대충 계산한 것"이라고 폄하합니다.
대신 실제 있었던 과거 사례를 어떤 주장의 논거로 내세웁니다. 가령 법인세 인하를 반대하며 이명박정부 당시 법인세를 25%에서 22%로 인하했을 때 투자규모가 늘지 않은 점을 '법인세 인하가 투자규모를 늘리는 주요 요인이 아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또 국내 최저임금이 두 자리대 인상이 됐던 2018~2019년 매 분기 적게는 24만개에서 많게는 65만개까지 늘었으며 2019년 고용률은 60.9%로 역대 최고치였다는 점 등을 들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률을 낮춘다는 주장은 틀렸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당시 투자규모가 늘지 않은 데에는 미국의 금융정책, 원-달러 환율, 중국과 일본 등 주요 교역국가의 경제 상황, 조선업과 반도체 등 주요 산업 경기 등을 다방면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 없이 단순히 그 당시 '법인세 인하'와 '투자규모' 요인만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요.
최저임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의 설명만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악화 요인으로 작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기 요인이 좋아서 고용 지표가 좋아졌다'는 가설을 깰 수 없습니다.
그리고 1992년 미국 뉴저지주-펜실베니아주 사례와 2018~2019년 한국의 사례 등 최저임금 인상 시기 고용률이 오른 사례만 선별적으로 제시하는데, 마치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고용률이 오른다'는 인식을 독자에게 은연중 심어주려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저자가 직접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202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카드 교수의 연구 결론도 '최저임금과 고용률은 별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데이비드 카드 교수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라마다 최저임금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효과도 다를 수 있다"라고 밝힙니다(TBS, 2021년 10월 29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TBS단독 대담..."최저임금, 이론 아닌 현실 반영해야" ')
이 책은 이외에도 미국 코미디언이 만든 낙수효과와 법인세 적정선을 제시하지 못한 래퍼곡선, 평균값으로서 GDP의 한계, 자원의 역설로서의 베네수엘라,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후 한국의 반도체 소부장 자립, 통화정책의 한계와 재정정책의 필요성,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옹호와 일부의 한계 등을 밀도 있게 다룹니다.
저자의 노골적인 민주당 편향에도 불구하고 평소 잘 생각해보지 못한 경제 현상과 정책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중도·보수층도 읽어볼 만한 경제학 책,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