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선언'
문재인·조국, 박근혜정부 수사위해 檢 키우고
정권 후반에야 '수사권 제한' 등 검찰개혁 시도
"봉건세력 타도에 부르주아 협력...이후 투쟁"
선언서 제시된 19세기 공산당 전략과 닮아
문재인정부가 집권 초기 박근혜정부 인사들에 대해 '적폐청산'을 하기 위해 검찰 특수부를 적극 활용했다는 이야기는 새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얘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좌천됐던 윤석열 대통령이 여주지청장에서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고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현재의 반부패수사부)가 2017년 검사 25명에서 이듬해 43명으로 대폭 규모를 키웠다는 사실도 익히 아실 것입니다.
문재인정부가 정권 후반기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개혁을 추진하자 더불어민주당 내 일각에서도 '검찰개혁을 할 거면 정권 초기부터 했었어야지, 적폐청산을 한다고 검찰 조직을 키워놓고 이제 와서 줄이려고 하면 무슨 명분이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갑자기 옛날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읽은 '공산당선언'에 나오는 공산주의화 전략과 이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전략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공산당선언에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시 엥겔스는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우선 부르주아지(자본가 계급)가 봉건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공산당선언 초판이 영국 런던에서 처음 출간된 1848년 2월은, 서유럽에서 혁명이 연이어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2월 혁명'이 터져 왕정이 폐지되고 제2공화정이 성립됐습니다. 이와 중 노동자 세력이 패배하고 자본가 세력이 지배권을 쥐며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그는 3년 뒤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가 됩니다).
독일에서는 '3월 혁명'이 일어납니다. 만하임에서 2500명여의 민중이 바덴 정부에 임시 국민회의 소집을 요구했고 마인츠에서도 봉기가 발생합니다. 베를린에서는 시민들이 출판의 자유, 의회의 설립, 시민군의 무장 등을 요구하고 나섭니다. 그러나 군대는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개시했고 희생가 303명이 발생합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뒤늦게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고 자유주의 내각 구성을 허용합니다.
이처럼 당시 서유럽은 봉건사회에서 이어져 온 왕족과 귀족, 신흥 세력인 부르주아지, 산업혁명 이후 늘어나던 노동자 세력이 일촉즉발의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직 왕족·귀족 등의 봉건세력이 실효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던 시기, 마르크스·엥겔스는 공산주의 세력이 자본주의 세력과 손을 잡아서라도 봉건사회를 먼저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시대, 즉 부르주아지 시대는 이 계급 대립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전체 사회는 점점 더 두 개의 커다란 적대 진영,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계급, 즉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열하고 있다."
"독일의 공산당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하자마자 그들과 공동으로 절대 왕정, 봉건 토지 소유, 프티부르주아와 싸웠다"
그들의 역사 법칙상 사회는 '봉건사회→자본주의 사회→공산주의 사회' 순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아직 봉건세력의 잔재가 남아 있는 만큼 부르주아지들과 협력해서라도 그들을 축출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물론 이 협력은 언제까지나 한시적입니다.
"그러나 그들(독일 공산당)은 노동자들에게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대적 대립에 대해 가능한 한 명확한 의식을 이끌어내는 일을 한시도 중단하지 않았다. 이는 독일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가 그들의 지배권과 함께 반드시 도입할 동일한 수의 무기들로 부르주아지에게 겨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며, 독일에서 반동 계급들을 타도한 후 곧바로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부르주아지가 봉건사회를 완전히 축축하고 사회 계급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이원화되면, 그때는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사회 구축을 위해 부르주아지와 투쟁한다는 전략입니다.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순차적으로 하려 했던 문재인정부는 이 공산당선언에서 아이디어를 따오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당연히 '봉건세력=박근혜정부 등 보수정부 세력', '부르주아지=검찰 세력'으로 치환됩니다.
공산당선언을 읽기 전에는 저는 문재인정부의 이 전략을 단순히 '토사구팽' 전략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물론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한시적으로 적의 적과 손 잡는 전략이 공산당선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민정수석으로서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모두 주도한 이가 조국 대표라는 점에서 공산당선언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과거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 동맹) 산하 기관지 사회주의과학원에 강령연구실장으로 참여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뜬금없이 색깔론을 펴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공산당선언을 읽었고, 1980년대 군부독재와 싸우던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공산당선언을 읽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죠. 문재인정부의 사정 전략이 이 고전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든 생각은 젊었을 때 읽은 책이 그 사람의 인생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조금은 당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에서 이 책을 소개했기 때문인데요. 유시민 작가는 해당 책에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소개하며 "이런 좋은 책이 쓴 시대의 맥락에 국한돼 현대의 독자에게는 접근의 한계가 있으니, 누군가 이 책을 현대에 맞게 새로 써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계속하면 이 책의 생명이 영원히 유지될 수도 있겠다(유 작가의 생각을 제가 이해한 대로 정리한 것입니다)"고 말합니다.
전 어떤 고전을 누군가 새로 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요. 공산당선언을 읽으면서 유시민 작가가 그런 아이디어를 이 책에서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봤습니다. 공산당선언은 1848년 2월 영국 런던에서 독일어판이 처음 발간된 이후 아주 여러 번 여러 나라에서 발간됐고, 그 와중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마르크스 사후에는 엥겔스 단독으로)는 그때마다 서문을 새로 썼습니다.
1872년 독일어판 서문에는 "'공산당선언 자체가 천명하고 있듯이 이 원칙의 실천적 적용은 언제 어디서나 역사적으로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그러므로 2절 마지막에 제안한 혁명적 조처들에 특별한 비중이 놓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이 구절들은 여러 면에서 다르게 써져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 문헌 비판은 1847년까지의 문헌들만 고려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미흡하다는 것은 자명하다"라며 1848년 초판 때의 부족한 점을 솔직히 적었습니다.
1882년 러시아어판 서문에서는 "러시아의 농민 공동체, 갈기갈기 찢어진 형태의 야생적 토지 공동 소유가 바로 공산주의 토지 소유라는 다소 고차원적 형태로 넘어갈 수 있는가 또는 그 이전에 서구의 역사적 발전에서 나타났던 동일한 해체 과정을 거여야 하는 가" 의문을 제기하며 "려시아 혁명이 서구의 노동자 혁명의 신호탄이 되어 이 두 혁명이 서로 보충한다면, 현재 러시아의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아직은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지만 혁명의 분위기가 고취되고 있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발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를 나타낸 것입니다.
1888년 영어판 서문에서는 과거의 '사회주의 폄하 발언'에 대해 해명합니다. 엥겔스(마르크스는 1883년 사망)는 서문에서 "(1848년) 선언이 써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사회주의 선언이라 부를 수 없었다. 1847년에 사회주의자란 유토피아 체계들의 신봉자, 즉 이미 단순한 종파로 축소되어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던 영국의 오언주의자, 프랑스의 푸리에주의자를 의미하는 한편, 자본과 이윤은 위험에 전혀 빠뜨리지 않으면서 갖가지 미봉책으로 온갖 사회적 폐해를 제거하겠다고 약속하는 잡다한 사회적 돌팔이 의사들을 일컬었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공산당선언의 서문은 발행할 때마다 그 나라의 사정과 시대상에 맞춰 적극적으로 초판 내용에 대해 반성하고 보완하고 해명합니다. 유시민 작가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다시 쓰자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공산당선언 서문이 그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외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온전히 책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제가 이해한 부분에 한해 씁니다.
-여타 책 소개에서 설명하는 것만큼 읽기 쉽지는 않다. 유시민 작가나 여러 지식인들의 책 소개를 보면 '공산당선언이 예상외로 교조적이지 않고 과학적, 체계적으로 당대 사회상을 담담하게 분석했다'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역시나 독일 철학을 했던 저자들답게 어렵게 썼다. 당시 노동자들이 공산당선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봉건사회→자본주의 사회→공산주의 사회'로의 필연적인 역사 법칙을 제시하지만, 그 근거는 오로지 서유럽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가령 "사적 소유는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중세 말 무렵 매뉴팩처에서 당시 봉건적 소유 및 동업조합 소유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생간이 이뤄졌고, 이 낡은 소유관계를 벗어나 성장한 매뉴팩처가 새로운 소유 형태, 사적 소유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소개한다. 동아시아나 중동 등 서유럽 바깥에 대한 고려는 없어 보인다.
-유시민 작가에 이어 이 공산당선언을 번역한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 역시 '공산당선언이 조롱받는 이유는 예측이 틀렸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라고 극렬히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공산당선언이 서유럽 역사에 근거해서 전 세계에 통용되는 절대적 역사법칙을 만들어낸 오류에 대해서는 그다지 지적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어렵습니다. 일독으로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지식인들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책 '공산당선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