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자 유리 그니지의 '인센티브 이코노미'
소비자, 첫 호가 기준으로 가치 판단
공인중개사, 별로인 매물 먼저 보여줘
'비싼 값 하겠지' 심리...깎을 때 만족감
도요타 하이브리드 '프리우스' 독특 외관
'환경주의자'로 보이고픈 욕구 충족시켜
일반 세단 모양 혼다 '시빅'은 외면받아
#첫 집을 마련하고자 부동산사무소를 찾습니다. 공인중개사가 처음 보여준 집은 10억 원에 위치도 별로고 30년 된 구축이라 생활감이 많이 느껴집니다. 그 후 비슷한 매물만 보여주던 공인중개사가 마지막으로 보여 준 집이 눈에 확 뜨입니다. 가격도 평형은 첫 집과 비슷한데 신축이고 위치는 첫 집보다 훨씬 좋은데 금액도 심지어 9억 원으로 더 쌉니다.
공인중개사들은 매물을 찾는 손님들에게 첫 번째 매물은 일부러 별로인 집으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수요자 고객은 첫 번째로 본 매물을 기준으로 그 이후에 봤던 매물들의 가격이 적정한지, 위치와 넓이 등 특성들을 비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가격이 높거나 위치나 상태가 좋지 않은 매물을 먼저 보여주고 나중에 내심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 집을 보여주는 것이죠. (책에 제시된 미국 사례지만 한국에서의 제 개인적 경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행동경제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실생활과 비즈니스에서 쓸 수 있는 생생한 인센티브 전략들을 소개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삶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420여 쪽 분량의 책에서 단 하나의 인센티브 전략을 고른다면 '첫 호가를 높이 불러라'입니다. 아마 다들 그 이유를 짐작하시겠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4가지로 구분한 지점이 눈에 띕니다.
첫 호가를 부르면 4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우선 '닻 내림 효과'가 있습니다. 소비자가 아무리 합리적이라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첫 호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깎으려 하기 때문에 판매자가 우위인 상황에 섭니다.
예전에 동대문쇼핑센터 상인들에게 '호갱'을 당하고도 가격을 깎았다고 우쭐해하던 제 모습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상인은 티 하나에 첫 호가로 5만 원을 불렀고 저는 십여분의 흥정 끝에 5000원 정도를 깎았을 뿐인데 말이죠. 생각해 보면 그때 기준으로도 그 옷은 3만 원에 샀어도 충분했을 거 같습니다.
첫 호가는 또 이렇게 해당 상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너무 싸면 '뭔가 하자가 있거나 질이 안 좋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같은 제품을 실수로 혹은 실험으로 가격을 두배로 올렸더니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첫 호가가 높으면 나중에 가격을 깎아줌으로써 '대비효과'와 '호혜성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첫 호가 보다 가격을 깎아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인식합니다. 소비자로서는 이미 가격을 깎아준 판매자에게 심리적 부채 의식을 느끼고 더 깎기를 주저하게 되기도 하죠.
같은 아파트를 10억 원에 내놨다가 9억 원으로 깎아준 것과 처음부터 9억 원에 내놓고 '정직하게'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면 쉽죠. 매수자 입장에서는 전자일 경우 만족도가 더 높을 겁니다.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9억 원에 샀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하이브리드 차량 초창기 미국에서는 도요타의 프리우스와 혼다의 시빅이 자웅을 겨뤘습니다. 결과는 프리우스의 완승.
저자는 도요타가 미국 차량 소비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자극했다고 평가합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이 초기에 나왔을 때는 일반 차량보다 차 가격도 비싸고 성능도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나는 환경을 중시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는 것입니다.
프리우스의 독특한 외관은 이를 드러내기 쉬웠습니다. 반면 혼다의 시빅은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하이브리드 차량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죠. 저자는 "혼다가 시각적 차별성이 거의 없는 시빅 하이브리드를 출시한 것은 실수"고 평가합니다.
테슬라 전기차가 국내 도입 초기 인기를 끌었던 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나는 '환경을 생각해서 전기차를 타는 쿨한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좋았을 겁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올해 전기차 폭발 사고로 테슬라 인기는 예전 같지 않기도 하고요.)
저자는 인센티브를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도록 촉발시키는 것' 정도로 정의합니다. 그렇기에 인센티브는 우리 실생활은 물론 마케팅과 인사관리 등 비즈니스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됩니다.
그런데 꼭 그 인센티브가 돈일 필요는 없을뿐더러, 상황에 따라서는 돈으로 주는 인센티브가 원래 늘리고자 했던 행위를 줄이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 행위를 촉구했던 원동력이 돈이 아니라 '사회적 신호' 나 '자기 신호'일 경구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플로깅'이 유행했는데요.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이 행위는 '나는 이타적이고 친환경적인 사람이야'라는 자기 신호와 이를 남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적 신호'를 바탕으로 확산됐습니다.
그런데 만약 서울시 같은 지자체에서 '한강에서 쓰레기를 주워 제출하면 한 봉투당 3000원을 드립니다'라는 정책을 펴면 어떨까요?
그간 자신의 플로깅을 쿨하게 여겼던 사람들은, 이제는 남들이 자신을 '3000원 벌려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으로 인식할까 우려하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간 플로깅을 하던 사람들 상당수가 더는 플로깅을 하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저자는 이처럼 인센티브를 경제적 인센티브를 직접 주는 방법과 '자기 신호' '사회적 신호'를 사용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나눠 상황에 따라 적정한 전략을 활용할 것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