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현 Nov 16. 2022

평행한 고민들에 관하여

사진 이야기 (1)

 가끔 시험기간 등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심적으로 압도되는 시기에 갖가지 고민들에 빠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지 않는 고민들과 안정적이지 못한 현재의 상황이 결부된 새로운 차원의 고민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키소스는 행복한 생각들에 제대로 사로잡힌 나머지 물에 빠져 죽는 비극적 엔딩을 맞이한다(나르시즘의 어원이 여기서 나온다). 그래서 말짱히 살아있는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라 생각하기로 단념했다.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를 행복할까

 무언가에 부딛힐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삶을 영위하려는 삶의 자세는 사실 시지프스와 다름 없다. 신들 신 제우스에게 대들었다가 평생 동안 무거운 바위를 가파른 언덕 위로 밀어 올려야하는 형벌을 받은 그가 과연 행복했는가에 대한 질물은 놀랍게도 오랜 철학의 토론 논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실존주의적 고찰에서 알베르 카뮈는 본인의 에세이를 통해 '삶의 부조리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더욱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카뮈는 삶은 근본적으로 부조리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의미나 질서가 실제로 마주하는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반드시 절망으로 이어지진 않으며, 오히려 일종의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며, 이 행복은 희망이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함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시지프스는 산을 내려오면서 잠시나마 짐에서 벗어난 순간 자신의 운명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되는데, 카뮈에 따르면, 이러한 자각과 수용은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일종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고민을 수용하는 방법

 시험기간이나 과제 듀가 끝나면 급박한 고민들은 해소되지만, 다시 또 본질적인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시지프스와 비슷한 속박의 굴레는 나를 감싼다. 그래서 건강한 나를 위해  ‘고민들은 평행하다’고 단정 짓게 되었다. 약간 뱃살처럼 평생을 함께해야되지만 노력해도 떼어낼 수 없는 관계랄까. 사실 뱃살은 뺄 수 있다. 고민도 마찬가지다. 다만 단기적으로 불가능할 뿐. 


2022


공원에 나들이를 나온 한 가정의 사진을 통해, 개개인이 서 있는 물리적/사회적 위치가 달라도 사람들의 시선이 평행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이게도 둥근 지구 위에 평행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기하학적 공리에서 소실점을 떠오를 수 있다. 


2018


지배적이었던 서구식 원근법에서 소실점은 모든 이야기의 그림이 끝나는 지점이듯이, 바로 이 둥글고 큰 지구 위에 사는 우리의 고민들은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하여 사라질 수 있다. 한편, 언젠가는 다른 고민들과 충돌하여 사라지기보다는 새로운 양상을 띌 수 있다는 희망적인 기대감 떄문에라도 우리는 고민을 많이 가지고 있는게 더욱이 건강한 나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금 뱃살을 늘려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고흐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