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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현 May 29. 2023

편향된 지식속 소신의 중요성

진실한 과학적 '사실'과 왜곡된 사회적 '베일' 사이에서

 인류의 대항해 시대에는 다양한 지도 작도법들이 등장했는데, 그중에서 '메르카도르법(Mercator projection)'가 아직까지도 쓰는 대표적인 스탠다드다. 흔히 '평면지도(flat map)'라고도 불리는 이 작도법은, 사실 20세기 초반 세계의 패권을 쥐던 서구세계의 국가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고, 그들의 영토를 과장하여 그리기 위함에 있다고 비평가들은 이 기법을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면지도가 더욱 익숙하고, 러시아가 아프리카 대륙보다 크다는 (잘못된)인식이 만연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메르카토르 투영법은 "제국주의적 동기"를 위해 사용되었다.
Mercator projection was used for "imperialistic motives"


Kellaway, G.P. (1946). Map Projections p. 37–38. London: Methuen & Co. LTD.
메르카도르 기법에 의한 지도(파랑색)과 실제 영토 크기(빨강색)


 현대역사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두고 '혁명'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작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한계를 도전할 깡이 있던 아웃라이어(혁명가)는 없었다. 아니, 사실 있어도 중세시대는 이단자나 마녀라고 낙인 찍혀 불태워 죽기 두려워 조용히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사실'을 알고 있어도 '편견'이라는 베일은 '사실'을 왜곡시킨다는 것이고, 이는 단연코 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띈다는 것이다.




 인류가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을 믿게 된 것은 비교적 근래지만, 놀랍게도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이 거론된 것은 기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관측 가능한 천체들이 모두 구형임을 바탕으로 지구 또한 둥글다는 연역적 결론을 도출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의 다른 위치에서 별들이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 일식 동안 달에 둥근 모양으로 나타나는 지구의 그림자, 그리고 고도의 차이에 따라 보이는 별의 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을 했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가정은 '지구는 둥글다'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의 크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하기에 이른다. 이 수학적 증명은 지리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에라토스테네스가, 고등학교 수학 및 과학 교과서에 잘 기록되어 있듯이, 헬레니즘 시대에 프톨레마이오스가 통치하던 이집트의 두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와 시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고 두 도시에서 태양의 각도를 비교하여 얻은 데이터에 기반한다.


헨리 왕자의 초상화와 1434년 공포의 곶 항해경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대항해에 반세기 정도 앞서, 포르투갈의 왕족 출신인 '항해왕 헨리 왕자(Prince Harry the navigator)'가 이슬람 세력을 유럽대륙에서 몰아내는 정복전인 '콩키스타도르'의 일환으로 북아프리카(현재의 모로코 지역)의 새우타 항구를 점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포르투갈은 적도 지방으로의 항해를 서서히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다는 오랜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나라의 멸망(1368년)과 함께 와해된 실크로드로 후추가 사라진 유럽 대륙은 대안이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질 못했다. 그러다 1434년에 헨리 왕자는 큰 발견을 마주한다.


 바로, '보자도르 곶(Cape Bojador)' 혹은 '죽음의 곶(cape of fear)'이라고 불리던 세상의 끝을 항해한 것으로, 이 지역은 당대 백인도 흑인으로 변하며 모든 것이 타버리는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항해는 당대 사람들의 상념을 도전하는 행위였고, 그렇게 15세기 말에 남아공의 희망봉을 거쳐 인도까지 잇는 해상무역루트가 개척되며 동인도회사들이 등장하기 전까진 독점적으로 유럽에 향신료를 공급하는 국가로 부상하게 된다. 때문에, 앙리 왕자는 이러한 '왜곡된 사실'이라는 베일을 벗긴 포르투갈의 영웅으로 평가받지만, 그는 동시에 '노예무역'의 창시자이기에 보편적으로는 그리 좋은 인물로 평가받진 않는다.


정리하자면, 당대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둥글기에 한 방향으로만 항해하면 인도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거의 2천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세상이 평평하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끝이 있다는 잘못된 상식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유럽 의회는 지난 22년 6월에 원자력 에너지와 천연가스를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함으로써 원자력 에너지와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설비 투자를 장려하였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강화시키기 위한 시지프스 같은 정책으로 해석되기에, 우리가 여태 이야기한 주제의 ‘현대판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즉, 사회가 얼마든지 대중에게 위대한 과학적/수학적 소산을 기만하는 행위는 시대를 관통하는 전형적인 레파토리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런 혼란스러운 사회가 겉보기에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놓인 이해관계들과 원리를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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