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그친 비로 인도 여기 저기 물이 고였다. 오후 5시가 다 되었어도 하늘은 여전히 어두워지지 않고 먹을 살짝 머금은 하얀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9월 말이 다 되었는데 한여름 같이 덥고 습한 날씨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곳곳의 고인물을 피하며 정처없이 걷다 성당이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준비한 긴 우산이 나를 지탱하며 걸음 걸이에 맞춰 탁, 탁 소리를 내었다. 성당 입구의 십자가를ㄹ 향해 경건하게 기도를 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시간 이상 걸어 지친 다리를 쉬게 할 곳이 필요했다. 의자가 보였다. 다행이 의자에는 비가 다 말라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병원에 누워있는 한 사내를 떠올렸다. 그는 급성 폐렴으로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피웠던 담배 때문일까? 아니면 평생을 물같이 마신 술 때문일까? 하긴. 둘 다 일수도 있지.’ 고개를 끄덕였다. 십자가를 보며 내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라 불리는 사내의 삶을 잠시 끄집어냈다.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배움을 포기하고 집안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효자였고 본인이 돈 번으로 동생들도 시집 장가를 다 보냈다. 젊었을 때는 책을 가까이했고, 취미로 우표와 옛날 돈을 모았다. 결혼은 그 시절 드물게 본인이 원해서 전라도 사람과 선을 보고 결혼했고 아이도 셋을 낳았다. 여기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뇌출혈로 쓰러져 허무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받은 충격일까. 어느 날 무속인이 되어버린 그의 어머니에 대한 상처일까. 아니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만을 위해서 산 삶에 대한 항변일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평소 다정했지만 술만 마시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가족에게 행패를 부렸다. 우리들은 이유를 모르고 그의 폭력 앞에 엎드리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다 결국 떠나버렸다. 어머니도 몇 번을 헤어질까 고민했으나 전라도 선녀의 날개 옷은 애 셋을 이고 갈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모른 척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쇠를 깎아 부품을 만드는 기술이 좋아 여기저기 불려 제법 많은 돈을 받으며 일했다. 하지만 수가 틀리면 공장 사장과 싸우거나 술을 먹고 주변 사람에게 행패를 부리다 짐을 싸 오기 일수였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의 벌이에 생계를 의지해야만 했다. 일 년의 반은 그리 살았다. 나중에 내가 공무원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벌을...받은 건가?”
성당 건물 꼭대기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 가족에게 왜 그래야만 했냐는 듯 말이다. 그러면서 애써 그에 대한 좋은 기억도 떠올려보았다. 술을 안 마신 날은 가족에게 살갑게 대했다. 학교 등록금도 내어주었으며 나의 결혼과 손주들의 탄생에 축하도 해주 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내 아버지였다. 짚어보자면 손에 꼽을 정도의 살가움과 아버지... 아버지. 그 이유만으로 난 그를 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어머니로부터 온 한 통의 전화는 결혼 전부터 물려받은 가장의 무게를 버티고 있던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선택을 하라고 하더라.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누나들과 내 생각이 달라 모든 결정
은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말도 안 되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 산소호흡기를 입에 물며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7을 가리키며 7일 후 다시 나오겠다고 약속했다. 옆의 환자가 계속 죽어 나가는 병실에서도 그는 삶을 갈망하며 버텼다. 새사람이 되기로 약속했다. 무엇보다 계속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인공호흡기가 갑자기 내 손에 쥐어진 것이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를 세상에 나오게 했던 아버지의 생사여탈권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이유가 가장이라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찾은 은신처가 결국 성당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기도문을 외고, 외기를 반복했다. 눈물을 흘리며 외는 기도문 속으로 아버지의 인공호흡기를 어느새 하느님의 손에 넘겨버렸다.
하늘이 곧 어두워졌다. 주머니 속에서 떨리는 전화가 날 흔들어 깨줬다.
“00대학병원입니다. 000씨 보호자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급하게 병원에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의 상태가 위독합니다.”
병원 인근 성당이라 병실까지 가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병실에 도착하니 그가 있어야 할 장소에 아무도 없었다.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환자실 구석 막이 쳐진 곳에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누워계셨다.
“000씨는 00시 00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미 짐작했음에도 믿을 수가 없어 손을 만져보았다. 온기 대신 자리잡은 냉기에 소름이 돋았다. 얼굴을 보았다. 인공호흡기로 벌어진 그의 입이 벌려져 있었다. 아니, 웃고 있었다.
장례식 기간 동안 성실히 가장으로서 역할을 수행 했다. 아버지 대신 슬픔을 이어 받고 어머니를 지탱해야 했다. 그러면서 난 그의 호흡기를 하늘에 맡긴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삼일장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깊은 잠에 들었다.
꿈을 꾸었다. 난 거실에 누워있었고 평소 즐겨입으시는 하얀 런닝과 잠옷 바지를 입으신 아버지께서는 소파에 앉아 날 내려다 보셨다. 생전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를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날 향해 계속 고개를 끄덕이시며 웃고 계셨다. 평안하신 듯 했다. 잠에서 깬 후 아무도 모르게 처음으로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