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

by 무결


199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많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매체와 이를 돋보이게 하는 도구(휴대폰)의 발달, 쇼츠(shorts)의 영향으로 예전보다 독자층이 젊지는 못한 것 같다.


80년의 시작년도에 태어난 나에게 라디오는 사춘기의 깜깜함을 달래주는 또하나의 안식처였다. 이문세, 고소영, 김현철, 이소라, 이본 등 당시 내노라 하는 스타들이 라디오 DJ로 활동했고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다 보면 적잖게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한창 들을 때는 라디오의 소리를 작게 줄여 듣다가 잠들었다. 그러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새벽 2시에 하는 FM 영화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워낙 좋은 음악을 많이 틀어주던 프로였지만 늦은 시간에 방송을하는 탓에 잘 들을 수 없었다. 운 좋게 감았는지 떴는지도 모를 밤에 귀가 뜨이다 보면 만나는 어둠을 노닐던 노래들. 그때 들었던 음악 중 지금도 인생곡인 곡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렇게 즐겨 들었던 라디오도 언제까지 가까이 할 수는 없었다. 학업의 집중을 위해서는 라디오 듣는 시간을 줄여야 했고, 입시에 가까울 수록 라디오는 노래보다 국어와 영어 듣기 지문만을 반복해서 내뱉었다. 입시가 끝나고 다시 차지할 줄 알았던 그시절 DJ들은 어느새 더 영(young)한 스타들에게 자리를 내 주었고 눈이 즐거운 시대로 나의 젊음과 인생이 따라 갔다.


그렇게 따라갔다. 따라...갔다. 따...라....갔.....다......휴~. 이제는 지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그 사이 불어난 몸과 떨어진 머리카락은 족쇄가 되어 발을 더 무겁게 했다. 답답한 밤은 나를 몇번이고 눈 뜨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똑.똑.똑!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시절 DJ들의 목소리가 다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10년,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어? 왔어?'하듯 반겨주는 목소리도 있었고, '너도 왔니? 나도 왔어!'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시절 감성 보다 좀 더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약간 쉰듯한 웃음소리가 거울 속의 나를 보듯 애틋하기도 하지만 같이 공유 했던 그시절 음악과 갬성을 다시 떠올려 주는 것 만으로도 나의 다시 밤을 날았다.


이제는 컨디션이 좋거나 주말이 되어야 늦은 시간까지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큰 카세트에서 작은 휴대폰으로, 마냥 틀어 놓으면 아침까지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는 앱 설정 하나로 자동으로 꺼지는 시대가 왔다. 나의 아이들은 라디오를 질색하기 때문에 보통 혼자 듣는 시간이 많다다. 하지만 나의 라디오 스타와 함께 추억과 낭만을 공유하는 설렘에 오늘도 라디오 앱을 꾸욱 누르고 이어폰을 끼며 자리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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