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칫국이 싫어요.
한국인의 밥상에는 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정론이다. 그래서 반찬은 없어도 거의 매끼 국이 밥 옆에 있었다. 손이 크셔서 한 솥 국을 끓이시면 다섯 식구가 며칠은 먹었다. 하지만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고 3 때의 일이다. 쉬는 날 없는 장사로 많이 피곤하셨던 어머니께서 그래도 새벽에 등교하는 아들을 위해 여느 때처럼 김칫국을 한솥 끓여 밥과 국 한 그릇을 내놓으셨다. 난 평소대로 국에 그냥 밥을 말아먹었다.
"국 맛이 어때?"
불 꺼진 부모님 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국 맛이라도 확인하고 다시 잠에 드시려는 것 같았다.
'평범한 그냥 김칫국이에요.'라는 말을 하기에는 그것밖에 내놓지 못해 미안해하시는 어머니의 말과 표정이 시큼한 국물 맛과 함께 느껴졌다.
"맛있어요. 오늘 같이 쌀쌀한 날에는 좋아요."
"그래?"
그랬다. 일상에 찌든 어머니의 주름을 하얀 거짓말이라도 해서 펴줄 수 있다면 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칼칼했다. 쌀쌀한 날씨는 일주일간 계속되었고 덕분에 아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머니께서는 아침저녁으로 김칫국을 내오셨다. 아버지는 드시지 않았다. 누나들도 먹지 않았다. 음식에 무딘 나도 일주일이 되던 날은 먹지 않았다.
이후 나태한 대학 생활로, 군대로 난 김칫국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이들 육아 문제로 다시 본가 근처에 살게 되었다. 아이들을 봐주시며 살림도 조금씩 도와주시는 어머니께서 어느 날 김칫국을 해주셨다.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해봤다. 쌀쌀한 날씨에는 김칫국이 좋지."
... 한 숟갈 먹어보았다. 그래. 이 맛이다. 시큼하고 칼칼한 국물. 그러면서 적당히 익어 너무 무르지 않고 사각거리는 김치.
"어때?"
이제는 낭만이 사라진 나는 큰맘 먹고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어머니. 저는 김칫국이 싫어요."
당황해하시는 어머니께서 오해하시지 않게 그때의 일을 충분히 설명했다.
"그때는 사는 것이 바빠서 그저 국 한 그릇이 다였네. 고기도 제대로 못 먹이고. 난 그 국을 네가 좋아한다니 까..."
하고 미안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래서였을까. 여전히 별로 나아질 것 없는 주머니 사정이지만 손주들에게는 이것저것 좋은 것을 많이 먹이신다.
"에휴~그때 널 이렇게 먹였어야 했는데." 하시며.
(그랬다면 제 키가 조금이라도...)
요즘은 연세가 드셔 귀찮다며 맛있는 국을 사 오시기도 한다. 그래도 밥을 먹으면 국이 있어야 한다며 여전히 국을 끓이신다.(김칫국은 없었다.) 얼마 전에 솜씨를 발휘하셔서 오랜만에 소고기 국을 한 솥 하셨다. 고기와 고사리, 대파와 콩나물이 엉켜 있는 것이 어머니의 주름과 겹쳐 보였다. 밥에 국을 말아 한 그릇 먹다 문득 김칫국이 그리워졌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시큼하고 칼칼한 맛과 적당히 아삭한 김치. 이제는 가능한 많은 것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이 국 한솥 다 먹고 말씀드려야겠다.
"어머니. 시간 되시면 김칫국 좀 해주세요. 조금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