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을 지독히도 짝사랑한 10년이었다.
막걸리는 쌀이라 좋아요. 맥주는 밀이라 좋아요. 소주는 이슬을 마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와인은 과일이니깐 좋아요. 보드카는 토닉이라는 좋은 짝이 있어 좋아요. 참 생각해보면 뭐 이리 좋은 것들 투성일까 싶지만 정말 좋아서 술을 즐겼다.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지지리도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몸에 꾸역꾸역 술을 소개했다. 싫다는 몸을 붙들고는 얘가 처음에는 씁쓸하고 아릴 수 있는데 이상하게 가까이하다 보면 달달한 위로가 된다고 강제로 친하게 지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뭐든 강요로 시작된 것들은 탈이 나고 만다.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된통 혼이 나고 말았다. 선생님께선 간경화와 간암의 가족력과 선천적으로 약한 나의 간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당장 술을 끊으라는 강하고도 명확한 처방을 내려주셨다. 술을 향한 짝사랑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운동하고 좋은 거 먹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 이렇게 간 관리했다가는 고통스럽게 영면할 날만 기다리며 후회로 오열하며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극단적인 결말이지만 꽤나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였을까? 술을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4번 이상 마시던 횟수를 한 회씩 한 회씩 지워갔고 오늘 드디어 금주 한 달을 채웠다. 누군가에게는 코웃음 쳐지는, 다소 앙증맞은 기간 일지 모르겠으나 맥주 한 캔도 마시지 않은 완전한 금주를 한 달간 지속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크나큰 사건이다.
아릴 정도로 차가운 맥주캔을 냉장고에서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다 머리가 띵해지는 상쾌함을 맞닥뜨리는 순간, 소중한 사람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팍팍한 삶에 위로를 축이는 순간들을 뒤로하며 일궈낸 거대한 성취이다. 술과 함께하는 사랑해 마지않는 순간들을 포기한다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성취감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한가득 나를 껴안아 주었다. 금주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됐다. 인생은 얕기도 깊기도 한 포기들과 작고 큰 성취들을 통해 형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때론 성취의 경험이 생각의 확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나는 항상 행복한 순간에는 술이 있어야 기쁨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은 금주 기간을 통해 이 생각이 얼마나 작은 생각인지 알게 됐다. 행복한 순간의 기쁨은 이미 그 자체로 충만하다. 술이 없어도 그때의 감정들은 오롯이 그득할 수 있다. 술을 따르고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로 돋워졌던 감정들은 더 생생한 대화와 웃음소리 만으로도 해사해진다. 기억이 파편처럼 흩어지지 않으니 행복한 순간들이 더욱더 확연하다.
술이 아닌 금주의 성취감에 조금 더 취해 있고 싶다.
(TMI: 언제까지 금주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