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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Feb 20. 2024

가끔은 일차선 도로를 달리는 인생.

그래도 고속도로와 시내가 주행이 편하긴 하다.

이태원 어느 레스토랑에서 한 없이 젊음을 과시한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과시란?

무작정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다.

나는 생각보다 바람직한 청년이었다.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은 많은 주방직원과 더불어 많은 홀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만큼 바쁜 매장이었다.

이태원의 특성상 편식하는 외국인들은 넘쳐났다.

그놈의 베지터블 베지터블... 대한민국이 얼마나 음식을 골고루 먹는지 난 그때 알았다.

매운 음식은 덜 맵게 요청하는 외국인들도 넘쳐 났다.

그러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고객들과 소통을 해야 고객이 원하는 메뉴가 테이블까지 전달되고는 했다.

내 영어실력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고 실수를 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방에는 주방을 책임지는 장(長)과 그를 어시스트하는 캡틴이 존재했고 많은 요리사들이 두 사람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홀은 어떨까?

홀도 주방과 마찬가지로 매니저와 캡틴을 중심으로 직원부터 파트타이머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두 집단은 서로를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오더 실수에 대해서는 굉장히 날 선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그 뾰족한 날은 주방과 홀을 이어지는 백바(back bar)에서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경계선을 오가지만 함부로 음식과 컴플레인에 관해서는 아무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관리자들만이 음식이 나오는 작은 배식구를 통해서 소통이 가능했다.  

    

홀에서 발생한 문제는 매니저를 통해서 주방장에게 이야기가 전달이 되어야 한다.

주방에서 발생한 문제는 주방장을 통해서 매니저에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

문제에 대해서 직원들이 말을 하게 되면 요즘 핫한 하극상으로 치부되고는 했다.      


말단 직원 시절에는 시스템이 너무나 답답했다.

나도 뚫린 입인데 왜 즉각 처리를 못하게 하는지 성격 급한 나는 당장 눈앞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훗날 내가 그 자리에 가보니 일관된 소통은 더 큰 문제를 막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수의 의견이 비책임자에 의해서 전달이 되고 받아들여진다면 오히려 엄청난 혼선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한 방향으로만 소통이 필요했나 보다.

책임을 질 수 있는 두 사람의 긴밀한 소통.

문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말이다.     


살다 보면 우리 머릿속은 복잡하게 엉켜버릴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한다.

이놈의 진상 같은 문제들... 잊을만하면 돌아오고 다시 생겨나기를 반복한다.     

이럴 때마다 주위에서 한 마디씩 거들기도 한다.

듣고 싶은 말 또는 듣기 싫은 말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모른 척해주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한 마디씩 하는 말들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배식구 앞 매니저와 주방장처럼 문제를 일대일로 대면하면 좋겠지만 실상 우리는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은밀하게 문제에 집중해서 해결하기에는 엄청난 번화가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를 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산만하다.

그리고 주위에는 훈수를 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 일상은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같기도 하고

빌딩 숲 속에 둘러 싸여 4차선 6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누가 더 빨리 달리나 속도의 시합을 하기에 바쁘다.

쉼 없이 브레이크와 액셀을 밟으며 멈춤과 출발을 반복하는 신호등 속에서 살고 있다.     


한 번쯤 혹은 두 번쯤?

일차선 도로를 달리는 기분으로 살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도로.

차 한 대도 찾아보기 힘든 도로.

주위에 보이는 수많은 빌딩은 보이지 않고 훈수 두는 사람도 없는 도로.

신호가 바뀌기 전에 서둘러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지를 정해두고 앞으로만 가만히 나아가는 도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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