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쓸모를 너무 좁게 이해하게 되었는가

철학은 왜 쓸모없다는 오해를 받게 되었는가

by 사고하라

오늘날 철학이 자주 쓸모없다고 오해받는 이유는 철학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쓸모라는 말을 지나치게 좁은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쓸모란 곧바로 결과를 내는 것, 눈에 보이는 효용을 제공하는 것, 짧은 시간 안에 성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무엇을 배우든 그것이 돈이 되는가, 경쟁력으로 연결되는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가가 먼저 질문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철학은 당연히 불리해 보일 수밖에 없다. 철학은 즉각적인 기술을 제공하지 않고, 눈에 띄는 결과를 빠르게 보여주지도 않으며, 어떤 문제를 곧장 해결하는 매뉴얼의 형태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철학이 쓸모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쓸모를 너무 협소하게 설정한 뒤 그 기준으로 철학을 재단한 결과에 가깝다.


쓸모라는 말은 훨씬 넓은 뜻을 가질 수 있다. 어떤 것이 쓸모 있다는 것은 단지 당장 눈앞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더 정확히 이해하게 만들고, 판단의 질을 높이며,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바로잡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별하게 만드는 힘까지 포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술은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게 해 주지만,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정보는 선택지를 넓혀주지만,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는지는 결정해주지 않는다. 어떤 전략은 성과를 높이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그 성과가 내 삶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말해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앞의 종류의 효용만을 쓸모라고 부르고, 뒤의 종류의 힘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낸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쓸모를 좁게 이해하게 된 데에는 현대 사회의 구조가 크게 작용한다. 성과와 효율이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면서, 눈에 띄는 결과를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이 가장 높은 가치로 올라섰다. 이 구조 속에서는 무엇이든 측정 가능해야 하고, 가능하면 수치화되어야 하며, 짧은 시간 안에 검증 가능한 결과로 제시되어야 한다. 즉시 환산되지 않는 힘은 쉽게 비실용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이때 쓸모는 삶의 전체적 방향을 다루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빠르게 달성하기 위한 기능적 도구의 의미로 축소된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보다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먼저 묻게 되고, 삶의 기준을 세우는 일보다 이미 주어진 기준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쓸모의 의미가 이렇게 바뀌면, 철학처럼 기준 자체를 묻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비생산적이고 우회적인 것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매우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삶에서 정말 큰 문제들은 대부분 바로 이 좁은 쓸모의 언어로는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성공과 충만은 어떻게 다른가, 자유는 선택지의 많음과 같은가,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정말 나의 욕망인가 같은 질문은 당장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쓸모없는가. 오히려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인간의 삶 전체를 좌우한다. 어떤 기준으로 살 것인가를 정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기술을 가져도 삶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방향이 흐린 상태에서는 효율도 쉽게 공허해지고, 성과도 쉽게 자기 소진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쓸모를 단지 즉각적 기능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인간 삶에서 더 근본적인 차원의 필요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다.


철학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필요를 다룬다. 철학은 오늘 당장 무엇을 더 잘하게 해주는 기술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왜 잘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 위에서 선택해야 하는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묻게 만든다. 철학은 삶의 표면을 빠르게 정리해 주기보다, 그 표면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와 가치와 질서를 드러낸다. 그래서 철학의 쓸모는 즉각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그만큼 더 근본적이다. 철학은 삶의 기술이 잘못된 방향으로 쓰이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힘이고, 많은 정보와 성과 속에서도 자기 삶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며,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끝내 붙들어야 하는지를 묻게 하는 힘이다. 이것이야말로 매우 큰 쓸모이며, 어쩌면 다른 모든 쓸모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철학을 쓸모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철학이 비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쓸모를 지나치게 좁은 형태로만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결과만을 유용하다고 여기면, 삶의 방향을 다루는 사유는 언제나 뒤로 밀릴 것이다. 그러나 방향 없는 효율, 기준 없는 성과, 의미 없는 성공은 오래 갈수록 인간을 더 깊이 흔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쓸모의 개념 자체를 다시 넓혀야 한다. 무엇이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는가만이 아니라, 무엇이 내 삶을 더 분명하게 만들고 더 정직하게 살게 하며 더 나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바로 그 물음 속에서 철학은 다시 쓸모없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쓸모를 지닌 학문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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