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말의 가벼움

재이있지만 아쉬운 점 많은, 민지형의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by Justin

어떻게 글을 쓸까 고민이 많았던 책이다. 내 생각이 편협한게 아닌지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도 많이하며 조심스러웠다. 그럴수록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책을 읽는 내내 또 한 명의 페미니스트, '록산게이'가 계속해서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일 수록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주제가 있다. 친하고, 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함부로 이야기 하다보면 은연중에 편가르기가 되고 서로 얼굴을 붉히기 쉬운데, 그 주제가 바로 '정치와 종교'문제이다.


정치와 종교의 공통점은 나와 적군을 양분할 수 있는 대립구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의 믿음과 대립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그것을 넘는 순간 어떠한 관계도 절연할 수 있는 결연한 의지를 표출한다. 정치 표현의 자유를 말하고 종교의 자유를 이해한다면서도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복잡해잔 사회 속 다원화된 가치관에서 가장 반대편에 서있는 것이 바로 '정치와 종교'가 아닐까?


이런 '정치와 종교'에 버금가는 갈등 주제로 근래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젠더갈등'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상대적 차별에 반대하는 여권 신장에서 더 나아가 남성의 세계관 자체를 거부하는 급진 여성운동 세력까지 등장하니 자연스럽게 남녀간의 대립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과거와는 다른 남녀 차별의 정도는 많이 약해졌음은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일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서부터 반대를 한다면 뒤에 글은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여성권리 신장에 대한 인식 수준의 보편화나,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체제 변화의 엇박자에서 오는 갈등은 아직 존재하는데, 이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인정하면서도 이에 따라 생길 수도 있는 상대적으로 받는 역차별을 남성 스스로가 인정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평등의 슬로건과는 다르게 아직도 남아있는 남성 우위의 가치관과 여성의 세계관의 충돌에서 비롯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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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본다면 민지형의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남성과 여성의 인식론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여성을 이해하면서도 아직 변화하지 않은 부모의 인식도 따라야 하는 남성과 이를 전면 부정하는 여자친구와의 갈등을 재미 요소를 가미하여 풀어나간다. 여자 주인공 역시 스스로를 '메갈'이라 칭하고 남자 친구가 절대 바뀌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인간 본연의 감정에 끌리는 것을 애써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갈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아쉬운 점은 작가가 오히려 통합과 이해의 과정의 '양방'운행보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특별한 갈등요인을 부각시키며 여성이 '메갈'이 되어 투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야기를 몰고 나가는 '편도'운행의 위험성에 있다. 여성이 받는 차별의 가지 수가 많을 수록 투쟁의 근거는 더욱 많아질지 몰라도, 그만큼 남성과 대립되는 투쟁의 전선은 그만큼 넓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인 작가가 남성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은, 서로의 이해를 시작으로 하면서도 작가 스스로가 '메갈'임을 자처하는 순간, 글 속의 많은 사례들이 남성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는 어려워보인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리는 남성의 전형적인 모습이 대부분의 남성이 지니는 한결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남성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책 속에서 등장하는 특별한 케이스들은 여성의 투쟁의 당위성을 강요할 뿐 남성 여성 모두에게 동일한 공감대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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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인용되는 책과 인물이 바로 '록산게이'이다.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의 작가이기도 한 '록산게이'는 본인이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정서적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여성을 남성에게 대립해야 하는 구도로 몰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자신 주변 사람들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이야기 함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남성 역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 문제점을 인식하고, 여성 역시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취하는 밑바탕이 되어준다. 록산게이가 말하는 페미니즘 출발은 '서로에 대한 이해',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명확히 선언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스스로 '메갈'이라고 호칭하는 것과는 다른 투쟁의 방식인데, 투쟁적이고 모든 것을 뒤집어 엎고자 하는 것이 바로 'Bad' 페미니스트이며, 여기서의 'Bad'는 '나쁜'의 의미보다는 '서툴다'의 의미로 본다면 '록산게이'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민지형'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소설의 내용과 무관하게도 '작가의 말'에서 명확히 고백한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사회는 좀비 투성이라 여성이 밖으로 나가길 두려워 한다고, 혹시나 좀비가 아니라고 항변하더라도 좀비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아주 극단적인 투쟁 선서이며 '록산게이'가 말한 'Bad' 페미니스트스러운 선언이다.


현대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솔직히 주류의 가치관이 되어 버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가족에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변화되었고 앞으로도 그 지위는 모성중심의 사회를 바뀌는 속도와 질양만큼 더욱 더 신장할 것암아 분명하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투쟁을 선언하기 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과제의 헤게모니를 가지기 위한 투쟁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의 여성이 받은 차별의 역사를 사례별로 나열하기 전에 남성도 여성의 편으로 만들 수있는 포괄적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존할 수 있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록산게이의 생각처럼 말이다.


재미는 있지만 그 이후의 감동이 없는, 호기심은 생기지만 스스로를 '메갈'이라 칭하면서 시작하는 주인공으로 인해 더 이상의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출판 전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날 듯, 사회도 남성과 여성의 힘으로 굴러간다. 지금까지 누구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남성 여성의 경계가 모호해질 만큼 뒤섞이고 있다. 사회의 주역할과 부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속도가 다르고 강도가 다르지만 여성 중심의 사회라는 동일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갈등과 투쟁으로 획득한 여성권력이 다시 남성이 차별속에서 어부지리로 획득한 혜택을 당연하다고 누리게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그래도.... 오늘 난 정치와 종교처럼 쉽게 꺼내지 말아야 할 주제를 너무 쉽게 꺼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