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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Nov 30. 2021

글로벌 시대, '민족'의 의미 그 이면을 생각하다

우리에게 민족이란? 고미숙의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다시 읽어도 센세이셔널한 책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문고판으로 나오기 보다는 단행본으로 출판되어도 손색이 없는 내용과 주제로 구성되어 있어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 받을만 하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그 기원에서부터 탐색해 나가다 보니, 현재의 상황에 접목해서 해석할 수 있는 '글의 기운'이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써왔던 '민족'이라는 말이, 작가의 말대로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애국주의'의 또다른 형태라는 거창한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식민지 시대를 가로지르며 형성해 왔던 근대의 주요한 메타포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념을 관통하는 최상위의 개념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학창시절 때부터 민족이라는 말을 쓰면 애국자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축구나 야구 경기의 국가간 경쟁에서 민족이라는 말 하나로 우리는 하나로 뭉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서인지,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이 단어는 '식상'하면서도 '짜릿'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거기에 힘든 외국 생활에서 '우리'라는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었던 그 힘의 근원에 바로 '민족'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해외에 살다보니 더 명확하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불로초를 먹은 것 같은 불사(死) 대동단결의 단어는,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였고 현실을 직시하는 개념이었다. 정말로 살아남기 위해서,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숱한 고난을 당한 국가에서 정신적인 무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계가 좁다고 할만큼 연결된 지금 시대에 이르러 어쩌면 과도한 민족의 낭비는 우리 자신을 한반도 반쪽 테두리 안에 묶어 놓고 근대를 청산하지 못하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우리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장해서 이야기 한다면, 불과 100년 전 보여주었던 한 국가의 집단적 히스테리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발동 원리와 진행방식은 크게 차이가 있지 않다. 그것은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민족이라는 말을 애용하면서, 몸은 세계화나 국제질서 맟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부분 만큼은 편협된 민족의 개념에 갇혀 있는 '인지적 부조화'가 그것을 반영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아직까지 계속된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물질 문명은 발달했을지는 몰라도 정신 문명과 의식은 근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후진성을 상대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과거 이완용을 매국노로 몰기 위해 민비의 역사적 행적을 뒤로 한 채  민족의 국모로 여기는 인식의 과장이 시작이라면, 자신이 믿어 왔던 것을 지키기 위해 공적과 과오를 구분하지 못하는 유아적 인식은 아직까지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모습이다. 


인류의 평화를 외쳐야 할 종교에서 민족이 나타나고, 남녀평등의 숭고한 개념에서도 우리는 민족이라는 이름하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여성성을 희생해야만 하는 부조리가 나타난다. 검증되지 않은 영웅을 기다리며 나의 대리인으로서 판타지 주인공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우리의 사고 속에 민족이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가 아직까지 자리잡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부터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한 채, 식민지라는 상황으로 야기된 우리의 편협한 민족주의가 100년의 세월 동안 겹겹히 쌓여 그 뿌리가 더욱 더 단단해 지는 것을 느낀다. 


작가의 주장이 하나의 논문 형식으로 이루어져 논증이 필요하며 반론이 있을 것을 알지만,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세상 밖으로 던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재의 문제점을 근원을 한 단계씩 찾아 올라가는 그 노력의 결실로서 바라본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역사는 발전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재미와 교양, 그리고 우리의 집단적 성찰이 필요한 책, 한 번은 다시 들춰 봐야 할 책이다. 쓸 말은 많지만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어렵다. 다만 근대의 우리 역사가 애처로울 뿐이다. 그리고 우리도 못보는 사이에, 그리고 안보려고 피하는 사이에 그 애처로운 현실은 아직 진행되고 있다.



PS. 우리가 강조한 하나의 민족, 그리고 국가가 누구에게는 다가오지 못할 벽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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