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맞서 골목길 상권 살리기 , 모종린의 <골목길 자본론>을 읽다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 중에 '알쓸신잡' 시리즈가 있다. 총 3개의 시리즈로 방송이 되었는데, 방송에 나왔던 수많은 토론 내용 중에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주제 하나가 랭킹을 세운 적이 있었다. 워낙 방대한 수량의 주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론이 이어진터라 모든 것을 기억하기에는 불가능 하지만, 확실히 기억하는 한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경주 황리단길 이야기에서 나온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그 이후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은 골목길 상권에서 항상 따라붙는 좋지않은 영향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고, 일각에서는 상권이 활성화된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식의 논리로 알쓸신잡의 감성팔이를 지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건물주의 횡포와 소규모 자영업자의 고통을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도 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됐던 간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는 그만큼 컸다.
그래서일까? 모종린의 <골목길 자본론>은 철저하게 골목상권의 흥망성쇠를 경제학 관점에서 다루며 정치적 색깔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 서울의 골목길 상권의 대표격인 홍대, 경리단길, 삼청동길, 성수동길에서 골목이 다시 재탄생하는 원리를 찾아내고, 다시 글로벌 브랜드가 가세하면서 수요 공급의 최정점을 찍고,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다시 골목길이 쇠락의 길을 걷는, 인생사에 비유하자면 골목 상권의 '흥망성쇠'를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추적해 나간다.
저자의 입장은 명확하다. 골목 상권은 도시가 재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이를 위해 자영업자는 물론 건물주,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 비단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머무르지 않으며 전 세계적인 추세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며 도시의 미래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골목길 자본론을 벗어나 오히려 '도시 재생자본론'이라 불리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 경제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 등 새로움에 대한 추구가 남다르다. 현재의 모습에서 보듯이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재건축, 재개발 부동산은 항상 주위의 눈치를 보고 숨죽이며, 언제든지 가진자 또는 가지려는 자의 소유욕과 물욕을 자극 시켜 훨훨 날아오르려 준비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돈'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좁은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정학적 한계를 시간차로 극복해 내는 전세계 유일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과거 무역의 개념이 공간의 이동에서 아이폰 이후 시간의 개념으로 진화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신도시, 혁신도시, 뉴타운을 갈망하고 있고, 이 뒷면에 버련진 원도심의 초라함은 생각하지 못한다. 밀물과 썰물인 마냥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우리만의 시각을 생각해 본다면, 저자가 가진 도시 재생학은 한 세기를 앞지르는 경제학 이론이라 불릴만 하다. 골목길에 충실한 미시경제학에서 출발하여 도시 전체를 재생하고 정체성 있는 문화로 격상시키는 거시 경제학으로 마무리 된다고 할까?
추억과 사유가 가득한 골목길을 누구나 하나 쯤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듯 하다. 그런 추억이 서린 곳을 경제학적으로 재생시킨다는 것은 단순하게 돈을 유통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과 직결된 창의적인 문화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듯 하다.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문화 인프라, 임대료, 기업가 정신, 접근성, 도시 디자인, 정체성으로 요약하듯이, 도시는 이제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가 좀 더 창의적으로 사람 중심의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면, 모종린의 <골목길 자본론>은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골목이, 도시가 계속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파괴되기 보다는 멋을 알고 운치를 이해하는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재생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