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zy Office 3화] 이방인에게 바다가 되어준 사람들
내 고향 부산에서 지낼 땐, 마음이 갑갑하고 힘들 때마다 바다를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조용한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요동치던 감정이 가라앉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좁은 고시원에서 시작하게 된 서울의 직장생활.
말로만 듣던 출퇴근 지옥철을 경험하고,
어딜 가나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업무는 어렵지 않게 금방 적응했고, 또래 연령대가 많은 젊은 기업이라
금방 친해지는 동료들을 사귈 수 있었다.
한 가지 놀라웠던 건 막상 서울에 와보니 고향이 서울인 사람보다
경기도나 인천의 수도권 지역 출신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옥철을 타고 1시간 30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출퇴근하는 이들,
비록 회사가 코앞이지만 감옥의 독방과 같은 크기의 고시원에서 사는 나...
우리 모두가 안쓰러운 존재들이었다.
평일엔 바쁘게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 후 친한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고단한 서울살이의 시름을 달래었다.
이후 이직하게 되는 회사 두 곳은 의심의 여지없는 업계 1위였지만,
첫 번째 회사는 강력한 경쟁사가 있었기에
서로 1위 마케팅을 펼치며 소송도 불사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봉에 내가 속한 기업영업팀이 있었다.
일부 업계 영업직군처럼 고객을 접대해야 하는 등의 일은 없었지만,
전쟁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기에
수시로 일 예상 매출 보고, 실시간 매출 보고 등의 압박을 견뎌야 했다.
회사 대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한화 김성근 감독을 꼽았고,
실제 강연자로 초청하는 자리를 마련할 만큼 혹독한 트레이닝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성향이었다.
대표님 말씀 中 :
"난 일할 때, 완전히 몰입해서 카드값 나가는 날도 잊어버려 연체된 적도 있을 정도야.
그 정도 수준으로 일에 미쳐보라고."
나의 속마음 :
'전 많은 매출을 달성해도 너무나 적은 인센티브 때문에
카드값이 부족해서 연체될 것 같습니다만.'
당근은 주지 않고 채찍만 휘둘러대는 회사의 횡포에 점점 지쳐갔지만....
주말 출근도 자발적으로 하며 노력했고, 입사 1년 차가 되었을 때
최단기간에 파트장으로 선임이 되었다.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며
주말에는 보라매공원이나 한강 산책을 하였는데,
밝게 웃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이방인인 것 같단 생각이
물밀듯 밀려오는 날이 있다.
이젠 서울생활에 충분히 적응도 된 것 같고,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이사도 했으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건데....
향수병이 찾아와 부산도 바다도 너무 보고 싶고
지독하게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또 하나의 가족, 또 하나의 친구가 되어준 직장 동료들.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원룸에서 오피스텔로 이사할 때에도 함께 해주었고
그들의 어머님께서 타지생활하는 날 위해
정성스레 만든 김치와 명절음식을 몇 차례나 보내주셨었다.
식당이나 배달음식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어머님들의 따뜻한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을 맛보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뭉클해지기도 했다.
화려하지만 내겐 불친절하고 차가운 회색도시처럼 느껴졌던 곳,
서울에도 바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