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ㅇㅇ초 과학실험반입니다. 이번주는 소라게 관찰 및 분양수업입니다. 분양을 원치 않으시면 문자 주세요^^
방과 후 수업 선생님의 문자가 왔다. '원치 않으시면'을 몇 번이고 읽었다. '저는 원치 않아요.'라고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화요일, 거실 한편에 소라게 집이 보였다. 왔구나, 왔어. 소미라는 예쁜 이름도 붙여져 있었다. 첫째 아이는 들떠있었다. 소라게가 소라껍데기에서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집게발이 하나 꿈틀거리기만 해도 아이는 기쁨에 가득 찼다. 온몸이 나와 까만 눈을 드러내자 나에게 그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연신 엄마를 불러댔다.
아침 일이 하나 늘었다. 소라게 집 안에 분무기질을 열심히 해서 축축한 습도를 유지시켰다. 먹이 먹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질 못했다. 통 안의 먹이는 그대로였다. 이상했지만 적응 중이겠거니 했다. 상추 말고 다른 먹이를 줬어야 했을까.
금요일, 퇴근해서 물을 뿌리다가 통을 좀 기울여보았다. 어떠한 움직임이라도 보이길 기대했다. 오른쪽으로 살짝, 왼쪽으로 살짝. 아무리 각도를 높여도 반응이 없어 뭔가 이상했다.
툭.
집게발 하나가 떨어졌다. 느낌이 싸했다. 아이를 불러 알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명백한 소라게의 죽음이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등 뒤가 주뼛거려 소라게 집에서 약간 떨어져 가까이 가지 않았다. 아이도 조용했다. 갑자기 나의 폰으로 온갖 슬픔과 눈물의 이모티콘이 왔다. 연이어 무더기로 쏟아졌다. 아이가 한쪽에 앉아서 보내고 있었다.
땅에 묻어주자고 제안했다. 갑자기 둑이 터지듯 아이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멈출 줄 모르는 오열을 했다.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그저 꼭 안아줬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는 남편에게 소라게를 묻어주고 오라고 했다. 아이는 소라껍데기는 다시 가져오길 원했다. 달래서 침대로 가서 누웠고,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오더니 소라껍데기를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최근 초등학교, 유치원 할 것 없이 아이들이 다니는 기관에서 생명체들을 자꾸 가져왔다. 가져온 씨앗, 발아된 씨앗, 이미 심어진 식물 등 그 어느 것도 우리 집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첫째 아이는 점점 식물 키우기에 자신 없어했다. 물만 주면 큰다는 콩나물을 키우기를 도전했으나 발아되다 썩었다. 자신감을 주기는커녕 이제 식물은 절대 안 된다는 쐐기를 박은 셈이었다.
집에 고양이, 강아지 등을 키우고 싶어 했다. 물론 나는 결사 반대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가족들로 족했다. 행복감보다 책임감으로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는 나로서는 단 한 방울의 의무도 더하고 싶지 않았다. 명확하게 선을 그어줬다. 너희가 독립하면 키울 수 있다고. 엄마는 너희를 씻기고, 똥 닦아주기도 벅차다고. 다행히 잘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렇게 지킨 무생물 하우스에 갑작스러운 소라게 친구가 찾아와 이렇게나 금방 떠나버릴 줄이야. 왠지 내 탓만 같아 아이에게 미안했다. 거북이 키우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사육 난이도를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아무리 쉽다고 해도 엄두는 안 났다.
다시 화요일이 되었다.
"엄마, 선생님이 소라게 한 마리 또 준대!"
"응? 왜?"
"내가 너무 슬퍼해서. 선생님이 한 마리 더 있대. 통을 가져가야 하나 고민이 돼."
Oh, My God. 이번에는 문자도 없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