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안, 나름 고심해서 일찍 내릴 것 같은 학생 앞에 기대하며 서있었다. 곧 등장해서 슬그머니 옆 기둥에 기대어 애매하게 나의 앞자리에 걸쳐서 있는 아줌마가 은근히 거슬렸다. 다음은 내 차지라고 번호를 뽑은 것도 아닌데 새치기당한 기분이었다. 이 학생이 내리면 앉기는 글렀다. 학생은 여전히 앉아있는데 얼토당토않게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못 앉게 될 생각에 마음이 벌써부터 붉그락푸르락했다.
예상대로 학생은 금세 내렸고 내 앞자리는 그 아줌마 차지가 되었다. 연청 둥근 카라 원피스, 금색 안경테와 단발머리, 청록색 크링클 페이턴트 사각 토트백 등 하나하나 눈으로 훑었다. 쏘아보는 대신 뚫어져라 봤다. 굳은 눈빛은 좀처럼 풀어질 줄 몰랐다. 이런 치기 어린 품행을 쓰자니 쩨쩨하고 남부끄럽다.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다. 쓰는 글에 이악스러움이 묻어날까 속이야기를 헤벌레 널어놓기가 꺼려진다. 약간의 거리만 유지하면 꽤 괜찮은 포장지로 살아가는 내 삶에 흠집 내는 글을 그래도 써야겠다.
스스로에게 염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체면을 차리는 행동보다 부끄러운 생각의 빈도가 줄어들기를 바란다. 치사한 나를 드러내며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면 좋은 생각, 바른 마음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덜어내고 털어내 낸 깨끗한 그릇에 감사와 자족을 담고 싶다. 삶의 평안을 지키고 싶다. 한 번씩 몰아쳐 와 높이 일렁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쪼개고 또 쪼개어 쓰면 좀 잔잔하게 지나가지 않을까.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는 에세이 집을 읽으며 30년도 훨씬 전에 박완서 작가님이 우리 아파트에 사셨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입을 씰룩대며 웃었다. 수년 전에도 알았던 사실인데 잊어버렸나 보다. 새롭게 안 사실인양 반갑고 기뻤다. 40세에 등단했다는 사실은 진주알처럼 소중히 간직했고, 그녀의 책 읽기 이력과 대학 전공은 사르르 흘렸다.
아무튼 쓰기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