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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l 15. 2023

내 탓인가, 차 탓인가

챙기자, 정신머리

 아침 8시 8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한다는 것은 급한 일이다. 8시 10분에 둘째 아이가 유치원 버스를 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뭘 안 챙겼나. 뭘 못 찾았나. 살짝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

 "차 어디다 세웠어?"

 "응?"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며 생각이 안 났다. 늘 있던 그 자리에 있을 텐데. 어제 어디다 뒀지. 아뿔싸. 어제 반차 쓰고 병원들을 들르느라 차를 썼고, 집 근처 정형외과에 주차하고 그냥 걸어왔다.

 "...... 나 차를 어제 간 병원에 두고 왔어."

 "뭐라고? 병원이 어딘데?"


 정신없는 아침 시간이라 나에게 뭐라고 할 시간은 없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거기 지하주차장이야? 차를 빼갈 수 있어?"

 "아니, 철골 주차장이야. 씨가 앞에서 관리하시는데 아직 출근 안 하셨겠지."


 그 정형외과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다. 건물 옆 주차타워가 있으나 한 번도 주차한 적이 없었다. 앞의 공간이 비어있어서 주차 관리 아저씨는 그 공간에 주차하라고 안내하셨다. 어제도 늘 세우던 그 자리에서 시동을 껐다. 아저씨가 오셔서 물어보셨다.

 "주차타워에 차 못 넣어요?"

 "앗, 이제 주차타워 사용하시나 봐요?"

 질문을 가장한 몰랐다는 사인을 보냈다.

 "오랜만에 오셨나 봐요."

 그리하여 내 차는 무려 주차타워에 있다.


 출근길에 걸어가며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도 못 챙겨 오는 정신 머리하고는. 굳이 핑계를 대자면, 출입문이 주차장과 다른 방향이라 그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 끝나자마자 둘째 아이 하원시간이라 시어머님께 전화드려 어딘지 여쭙고 거기로 걸어가느라 차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아, 어떤 변명을 해도 설득력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이 탓을 하기에 대학시절의 전력이 있다. 동아리방에 커다란 가방을 두고 왔으나 모르고 있다가 동네에서 만난 친구가 물어봐서 깨달은 일은 아직도 그 친구의 놀림거리였다.


 남편은 전날 차를 회사에 두고 왔다. 출근이야 회사가 가까우니 내 차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 학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형외과에 찾아갔다. 1층 주차타워에 있는 차를 그대로 빼서 출근했다고 연락이 왔다. 오, 기쁜 소식이었다. 차가 없어질리는 없지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심지어 야근 예정이라 퇴근 후 일찍 빼지도 못했다. 다시 안 가도 되니 편한 것도 있었다.


 야근 후 집에 왔더니 남편이 말했다.

 "Bmw였으면 두고 왔겠어?"


 왓? 이건 또 무슨 소린지. *&^%₩#@!


덧붙이기.


 토요일 아침부터 걸어서 정형외과 치료를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내 차를 보다가 번뜩 생각났다. 아저씨가 주차타워 들어갈 때 걸린다고 차의 안테나를 빼주셨다. 그 안테나가 그대로 달려있었다. 잊지 않고 안테나를 미리 꽂아주신 아저씨 감사합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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