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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스블루 Jul 15. 2016

나를 채우는 시간 2

첫 번째, 독서

방학을 맞이하여 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 방학만큼은 알차게 보내리라!'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6개월 전부터 고대하던 계획이 갑작스럽게 무산됐다. 두 달이라는 기간이 내 손에 무계획으로 남겨진 것이다. 


방학 직전 수업 가는 길에


무계획이라니. 계절학기는 이미 (다행히도) 신청 기간이 끝나 할 수 없게 됐고, 아르바이트 또한 당장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급히 특별한 활동이 없나 찾아보았지만, 대부분 모집이 끝난 상태였다.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이 상황이 참 당황스럽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쾌제를 불렀다. 두 달 간의 무계획이라니, 이것은 두 달 간의 유럽여행(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만큼이나 즐거운 일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비록 시작은 무계획이지만,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야지. 차곡차곡 계획을 쌓아보아야지.' 시작은 굉장히 야심 찼다. 그러나, 정작 무얼 할지 생각을 해보니 마땅히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방학 직전, 시험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방학 직전, 과제가 하기 싫어서


마지막 시험 전날이었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 우연찮게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고 난 무언가에 홀린 듯 근처 교보문고로 향했다. 시험 기간엔 공부만 빼고 다 즐겁다 하지 않던가. 그런 이유를 떠나서라도 아무런 계획 없이 어딘가로 가고플 때, 난 매번 서점으로 향했던 것 같다. 홀로 어딘가를 갈 수 있을 용기가 생기고부터 내가 가장 편안하게 드나든 장소가 바로 서점이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누구도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을 공간. 모두가 조용히 자신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혼자 서점에 들를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신간을 살펴보고 전부터 보고 싶던 책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사 손에 들고 나오는 일이 그렇게 즐겁더라. 내 것이 된 책을 바로 읽지 않더라도, 그 책이 내 방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곤 했다. 새로 산 옷을 입지는 못하고 가만히 걸어둔 채로 가끔씩 꺼내보는 것처럼. 그러고는 찬찬히 책을 펴 드는 것이다. 일요일 같은 날, 느지막이 일어나 머리도 감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 책을 펴 들 때의 기분. 


최근 들른 독립책방의 입구


그날도 그랬다. 다음날 마지막 시험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차분히 책을 골랐다. 좋아하는 작가의 새 에세이와 전부터 궁금했던 잡지도 한 권 집어 들었다. 지하철을 거꾸로 탄 덕분에 평소보다 30분이 더 걸린 귀갓길이었지만, 마음만은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가방을 새 잡지와 책으로 가득 메웠기 때문인 건가, 늦은 시각에 서점의 고요를 만끽해서 그랬던가. 그날만 해도 별다른 생각 없이 간만에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책들은 시험에 대한 예의로 펴보지 않고 책상에 가만히 놓아두었다. 


그렇게 폭풍 같던 시험들도 끝이 났고 나는 진정한 무계획 상태로 방학을 맞이했다. 방학의 첫 주말, 난 정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느지막이 일어나 그날 사온 책을 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책에 몰입하다 순간 복잡한 감정이 내 마음을 스쳤다. '아, 내가 이토록 독서를 좋아했던가. 이 순간이 너무나 여유롭고 행복하다.' 순간적으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꽤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물론, 심각한 편식쟁이였다. 소설이나 에세이만 무작정 읽어댔었다. 아주 어릴 때는 동화책, 천천히 나이가 먹어가면서 성장소설, 국내소설, 해외소설, 다양한 에세이나 자기계발 서적까지 관심 가는 책들은 모두 읽었던 것 같다. 


방학을 기념하는 만찬과 내가 좋아하는 셔츠


요즘은 독서를 어떠한 덕목이나 자랑거리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이 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책 말고도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다.' 현재 우리는 가격이나 장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즐길거리가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 책은 그중에서 그리 돋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시간 때우기'가 해결되고 조금만 투자한다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즐길 수 있으며 존경하는 인물의 강연도 참석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몇 년 전의 우리를 생각해보자. 최소한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의 우리를. 스마트폰이 없는 유년시절을 보낸 내 기억에는 친구들과 동네 공원에서 뛰어놀던 기억,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 설레던 기억,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예상치 못하게 최고의 식사를 한 기억들이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우릴 불행하게 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스마트폰을 애용하며 (아니, 나는 아무래도 인스타그램 중독 같다)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편의에 만족한다. 그런 내가 스마트폰의 등장을 살짝 탓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게임이나 운동을 그리 즐기지 않았고 (특히 게임은 지독하게 못한다) 스마트폰도 고등학생이 되어 접했기에 유년시절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은 책 읽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소 억지스러운 변명일지는 몰라도, 스마트폰이 나타나서 난 그토록 좋아하던 '독서'와 멀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이 내게 보여준 휘황찬란한 자극들에 취해, 한동안 독서가 내게 가져다준 모든 것들을 잊고 있었다. 


독서가 내게 가져다준 것들이 무엇일까. 무계획이 내게 쥐어준 시간을 할애하여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가장 먼저는 앞서 이야기 한, 서점에서 찬찬히 책을 고를 때와 느지막이 책을 펴 들 때의 기분이다. 그리고 일요일 낮,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누워 책에 집중할 때의 기분. 이 세 가지 행위에 한 단어를 덧붙이면 그 행위들이 가져다준 기분을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 단어는 바로 '여유'다. 


차분한 서점의 공기를 느끼며 여유롭게 책을 고를 때.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롭게 책을 펴 들 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누워 여유롭게 책을 읽을 때.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한 독서는 내게 '여유'를 알려줬다. 진정으로 여유를 즐기는 방법, 바쁜 일상 안에서도 여유를 찾는 방법을 일깨워 줬다. 독서란,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책 안에 담긴 세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때론 그 안에서 현실에 필요한 답을 찾기도 하고 때 아닌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것이 독서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다. 스마트폰으로 좋은 영상이나 글귀를 찾아보는 일이나 친구들과의 카톡으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지만, 담담한 문장에서 받는 에너지는 그 어떠한 자극보다 강하다. 나, 그리고 많은 이들이 어릴 적 읽은 동화책과 금세 읽고 책장에 꽂아둔 책들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순간들에서 그 힘은 발휘되고 있을 것이다. 


바라본 조합이 좋아서 찍은 사진. 책, 이어폰, 에코백


먼저 이야기 한 부분은 내면적 영향이라면, 독서는 내가 받은 내면적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표출하는 방법도 제공해 주었다. 꾸준한 책 읽기는 내가 느낀 점, 내가 생각한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해줬다. 대화 능력이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쌓이는 것이라 생각했을 때, 글쓰기 능력 또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말하기와 쓰기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독서야 말로 말하기와 쓰기, 그중에서도 쓰기 능력을 키우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확한 문장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두 알 것이다. 단순히 말하기와 쓰기라는 형태의 구분을 짓지 않더라도 그 사실은 명백하다. 상대방이 전하는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 그리고 그때 전달자가 느끼는 답답함을 모두 직접 경험해 보았을 거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적정한 표현 능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문장, 즉 표현 방식을 습득하고 나아가 다양한 관점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사고방식을 확장한다. 이렇게 우리는 충분한 독서를 통해 표현 능력을 길러나간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의 능력을 키우기까지는 독서라는 행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굳이 찾아 읽지 않는 이유다. 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책들을, 문장들을 읽었다. 그 의미는 지속적인 독서를 한다면, 풍부한 읽을거리를 접한다면 우리는 더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내가 독서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이유다. 


지속적인 독서를 한다면,
풍부한 읽을거리를 접한다면
우리는 더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나를 채워가는 시간 1'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나의 수많은 생각들을 뒷받침해줄 만한 어떤 알맹이가 부족하다.
아무리 내가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이제는 그 생각들을 정확히 활자화하기 어렵다.
떠오르는 생각에 비해, 머릿속에 든 것은 부족하다 해야 하나.

지난 글에서 내가 고백한 말을 살펴보면, 내가 '책 읽기'의 절실함을 느낀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간 읽었던 책들에서 얻은 에너지로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면, 오랜 시간 충분한 독서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고 정리하면 되겠다. 


친구가 나의 글쓰기를 응원하며 선물한 노트의 표지


흔히 '독서를 하면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는 우리에게 간접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와 같은 말들. 솔직히 이런 말들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그 행위에 대한 부담감 혹은 반감이 생겼었다. 내게는 그저 '공부하라'는 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상상하는 그런 공부, 해야 해서 그냥 하는 공부. 그래서 싫었다. 하지만, 며칠 전 끊임없는 들여다보기 끝에, 온전히 나를 위한 독서의 의미를 되찾았다. 그 의미는 오로지 나만의 문장으로 정리된 '내가 꾸준히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독서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독서가 내게 필요한 이유. 

정리되지 못한 채로 떠다니던 생각들이 활자화되어 눈 앞에 있을 때의 반가움이 좋다. 이는 괜한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며 그 문장들의 연장선 상에서 난 또 새로운 생각들을 해내기 때문이다. 

- 최근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을 읽고 적은 생각

마지막으로, 독서는 그 생각들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현재 나는 방학 동안,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기를 실천 중이다. 방학이 끝나고도 자연스럽게 계속되길. 독서에 대한 내 다짐이 흐려질 때마다, 이 글을 다시 읽을 생각이다. 스스로를 위한 자극제가 되길 바라며.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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