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보통 내가 밑도 끝도 없이 친한 척을 해대면 그건 그 사람이 무척 흥미롭다는 뜻이거나 반대로 기왕 만난 거 기분 좋게 헤어지자는 가벼운 심보이다.
나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 새로운 인물은 매우 적어서 대부분의 경우, 결국엔 후자의 마음으로 끝이 난다.
나는 서서히 스며드는 관계가 좋다. 시작이 흥미로운지, 기억할 수도 없이 희미한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알게 되는, 이 사람이 내 사람임을 알아차리는 관계가 좋다.
스며드는 것에 마음이 간다.
너무 강렬해서 누구라도 눈길을 빼앗길 것들은 내게 벅차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뜻을 바랄 때. 모두가 격렬하게 무언가를 바랄 때,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잠잠해진다.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이 바라는데, 나의 마음까지도 그곳에 실어야 할까, 힘이 돼주어야 할까. 알 수 없는 회의와 의문에 둘러싸이곤 한다.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마주한다 해도 난 다른 이들보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곰곰이 살핀다. 제 아무리 강렬한 일이라도 그것은 분명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답에 그대로 빠지는 것이 두려워 나는 질세라 발을 뺀다. 무관심하다는 듯 멀찍이 서서 바라본다. 쉴 틈 없이 전개되는 상황에 혹시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봐. 나를 포함해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조차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지나치는 일이 있을까 봐.
요 근래 나의 이 자세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내가 속한 곳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바랄 때, 덤덤하게 물러선 나를 보았다.
'나는 비겁한 사람인가? 나는 지나친 회의감에 빠져있는 것인가? 나는 결속이라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영원한 타자인가?'
난잡한 형태의 의문은 얼마가지 않아 한 문장으로 해소되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다른 시선이 될 것이다. 모두가 한 곳을 향해 달려갈 때, 문득 돌아보게 하는 시선. 거창하지도 않으며 때론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겠다. 설령 느림보라 불릴지라도, 무지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다른 시각이 되어줄 것이다. 일부러 그런 마음을 만들어내진 않을테지만, 앞으로는 종종 찾아오는 나만의 정적을 거부하지 않을 생각이다. 더 아끼고 발전시켜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도록.
어떤 강렬한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 되고 싶다.
크게 눈에 띄는 개성도 강렬한 메시지로 사람들을 현혹시킬 능력도 없다. 다만, 누군가에게 스며들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관계처럼, 어느 날 문득 깨닫는, 생각해보니 마음에 새겨진 사람. 가만히 스며들고 싶다. 혹은 수줍게 스며들었다 홀연히 스쳐 지나는 시선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