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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호 Apr 05. 2024

벌거벗은 윤금님

윤석열 정부 2년 톺아보기

길을 걷다가 학교 곳곳에 붙은 대자보들을 찬찬히 읽었다. “전세사기 외면하는 F학점 국가“ ”누구나 그 물살에 휩쓸릴 수 있었다“ ”보수정당의 정치인이 집권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등. 지난달 이태원 참사 유가족 중 한 명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기억과 안전의 길’에 투표 독려 대자보를 붙인 게 도화선이 됐다. 그 후로 전국 43개 이상 대학교에 화답 대자보가 붙었다. 일부 글은 투박한 논리와 과격한 언어 탓에 비약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들이 외치고 있는 건 하나였다. 내 얘기 좀 들어 달라는 것. 윤석열 정부 집권 3년차. 내 기억에 남는 것 역시 ‘불통’이다.


고질적인 불통은 집권 전부터 예견됐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깜깜이’였다. 공정이나 상식, 정의, 법치주의 등 손에 잡히지 않는 애매모호한 ‘좋은 말’들로 선거를 치렀다. 유권자들이 꼭 알아야 할 국정운영 철학이나 비전, 정책 등은 뒤로 꽁꽁 숨겼다. 특히 화룡점정은 자유였다. 윤 대통령은 집권 후 수백 번 자유를 부르짖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 ”자유가 살아 숨쉬게 하겠다(?)“ ”자유의지(?)“ “3•1 운동은 자유민주주의에 토대를 둔다(?)“ 등. 지금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건가? 이동의 자유나 직업 선택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위태롭다는 건가? 아니다. 그냥 윤 대통령이 언급한 수많은 자유는 반동적 포퓰리즘이고 ‘개소리(해리 G. 프랭크버트)’다.


윤 대통령의 자유는 그냥 ‘기득권의 자유’다.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소득세, 증여세 등 각종 세금을 시원하게 깎았다. 금융투자소득세와 상속세도 손보려 한다. 99% 서민들에겐 아무런 효능도 없는 명백한 ’부자 감세‘다. 조세정의를 뿌리 뽑으려는 시도다. 결국 지난해 우리 재정은 ‘역대급 세수 펑크’ ‘역대급 불용액’ 등의 신기록을 세우며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세금이 걷히지 않으니 국가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예산이 부족하니 역사상 최초로 R&D 예산을 삭감했다. 국가 경쟁력과 미래 먹거리를 송두리째 뽑은 셈이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3고)로 힘들어하는 서민들을 위한 지원도 끊겼다. 문 닫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늘었고, 가계부채는 치솟았다.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 됐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철 지난 ‘낙수효과’ 경제정책을 무려 2024년에 실시한 결과이자 민낯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관리 대책도 들은 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 120시간“씩이라도 일해서 “불량식품 먹으라”는 공약을 향해 가열차게 뜀박질하고 있는 것 같다.


불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갈등을 화합해야 할 대통령이 되레 과격한 언어를 직접 총동원한다. 헌법으로 보장된 단체행동을 하는 노동조합을 ’조폭‘으로 규정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민단체를 향해선 ’반국가세력‘ ’공산세력‘ 낙인을 찍었다.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긴 이유는 ‘국민과의 소통’ 아니었나? 그런데 역대 대통령이 빼놓지 않고 해 왔던 기자회견조차 2년째 묵묵부답이고, 그조차 ‘편집된’ 녹화방송으로 갈음했다. 도어스테핑은 중단된 지 2년이 돼 간다. 그러면서 의회가 의결한 법안 9개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독재 수준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게 느껴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법 개정에 분노한 시위대와 얼굴에 침을 튀겨가며 언쟁을 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행사 도중 기습 시위에 나선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들을 제지하는 경호원들을 만류하며, 몇 분 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대화는 바라지도 않는다. 듣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윤 대통령은 그냥 입을 막아버린다. 누가 조폭이고 누가 반국가세력인지 되묻게 된다.


윤 대통령의 불통 국가운영은 외교 분야에도 이어졌다. 아베 전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를 기시다 총리는 버리지 않았음에도, 윤 대통령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대의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양보했다. 일본은 인류사 최초, 바다로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했음에도 이에 대해 국민들이 우려를 제기하자 ‘가짜뉴스’라고 일갈했다. 당시 윤 정부는 ”물컵의 반은 우리가 채웠으니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물컵은 아직도 텅텅 비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렵사리 세운 ‘한반도 운전자론’은 구석에 처박혔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함으로써 우리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얻을 건 얻겠다는 전략이 사라졌다. 한미일이 밀착하니 그 반동으로 북중러가 뭉쳤다. 대북제재 연장 여부를 논의하는 유엔 회의체는 러시아의 반대로 임기를 종료했다. 국제적 대북제재에 빈틈이 생길 우려기 생긴 것이다. 사상 처음이다. 북한에 숨통을 틔우려 하는 것은 과거 좌파 정부가 아닌, 현재의 강경 우파 정권이다. ‘외세에 갖다 바친 맹목적인 양보‘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이자 수사대상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신임장도 주지 않은 채 사본만 들려 도피시키듯 비행기에 태웠다. 반발이 심해지자 11일 만에 돌아오긴 했지만, 이 자체가 대호주 외교에 대한 심각한 결례다.


여당은 이재명과 조국을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굴 심판하겠다는 건가? 이재명과 조국은 이미 ‘처벌받은 내로남불(최병천)’이다. 반면 윤 대통령 장모와 김건희 여사 등은 ‘처벌받지 않은 내로남불’이다. 이들에 대한 수사조차 뭉개고 있으니, 윤 대통령 가족만은 법치에서 예외인가.


루소는 “국민은 투표 할 때만 자유로우며 의원이 선출되면 국민은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 표를 단념해선 안 된다. “투표를 거부하든 포기하든, 그 이유가 얼마나 절실하고 속 깊은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투표하지 않는 이의 분노와 비애와 절규는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니 해석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으니 경고도 위협도 되지 못한다.(이진순)”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그 이름 자체가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 태초 신 중 하나다. 일 년이 365일이고 하루가 24시간이듯, 크로노스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신의 아들로, 기회의 신이라고 불린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있을 때 한 시간이 일 초 같은 것, 반대로 고통 중에 한 시간은 일 년 같을 수 있는 것이 그 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선택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충만한, 혹은 빈약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남았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낼지,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낼지는 순전히 우리 손에 달렸다.


그래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할 것이다. 이태원에서 스러진 159명의 얼굴들과 세월호에서 떠나간 어린 청춘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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