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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호 May 30. 2023

백인의 아시아인 혐오 정서는 어디서 왔을까

한 모녀가 나란히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다. 엄마는 급히 가야할 곳이라도 있는 듯, 초조하게 손목 시계를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눈은 열차가 들어오는 지하철 터널을 향하고 있다. 딸은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채 엄마가 보는 방향의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다. 잔뜩 경계한 한 모녀의 모습.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 잡지 <뉴요커>의 2021년 4월자 표지 일러스트다.​​

우리나라와 미국 한인 사회, 더 나아가 전세계 아시아인들을 불안하게 만든,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기억하는가? 해당 표지가 나온 시점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전세계를 덮친 데 더해,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혐오 범죄도 잇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팬데믹이 인류의 건강과 경제활동을 단절시켰을 뿐 아니라 소통까지 차단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들이었다. 단절된 인류는 서로를 혐오하고 배제했다. 정확히는, 백인 사회가 아시아인을.​


이같은 아시아인 혐오가 발생한 원인은 이른바 '희생양 찾기'에서 기인한다. 경제 불황이나 전쟁, 전염병 유행 등과 같이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인류는 희생양 찾기에 혈안이 된다. 그리고 희생양은 주로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된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과거부터 그랬다. 본능이다.

14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교회의 권위는 추락했다. 교회 관계자들은 흑사병의 원인을 마녀, 동성애자, 외국인, 유대인 등으로 몰았다. ‘별종'들의 존재 자체가 신의 분노를 불러와 흑사병이 퍼졌다는 주장이었다. 유럽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876년 미국에서는 '천연두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미 당국은 "중국 이민자들은 불결한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천연두 사태의 원인을 중국 이민자들로 꼽았다. 과학적인 근거가 아닌, 자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이유였다. 1899년 하와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하와이 내에서 선페스트가 급속히 퍼지자, 당국은 차이나 타운을 진원지로 지목했고 중국인들이 머무는 건물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더 나아가 이들을 공공장소로 소집해 ’훈증 소독‘을 시켰다. 아시아인의 인권이나 재산권, 프라이버시 같은 권리는 없었다.

이처럼 아시아인들이 희생양이 된 데는 '인종주의'가 한 몫 했다. 생물학적 특징을 본질적인 요소로 간주해 인종 사이에 우월이 있다고 믿는, 그래서 차별과 예속을 정당화하는 신념 체계 말이다. 인종주의는 19세기 들어서면서 원주민의 땅과 생명을 강탈하고, 흑인을 노예로 예속시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백인들에게 꼭 필요했던 이데올로기였다. 이들은 인종주의를 이용해 대내적으로는 백인 중심의 위계적 사회를 만들고, 대외적으로는 비서구 사회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

히틀러의 나치즘 같이 ‘말도 안 되는' 신념이 독일인들에게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인종주의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데에도 몇가지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종교, 과학, 법이다. 간단히만 말하자면, 백인 목사들은 "백인은 하나님이 창조한 온전한 인간이고 비백인은 야만인이자 미개한 존재"라고 설교하며 비서구인에 대한 억압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흑인 노예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도였지만, 이같은 신념은 백인들에게 깊게 뿌리내리고 말았다. 목사들처럼 과학자들과 법학자들도 인종주의를 퍼뜨렸다. 과학적 저널을 조작하고 백인들에게 유리한 불평등법을 만드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니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나타난 것으로 보였던 아시아인 혐오 범죄는 이번에 처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전부터 존재해 온 백인들의 차별적인 신념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을 뿐이다. 다만 과거 인종주의가 퍼질 때 종교, 법, 과학이 기여했듯, 이번에 아시아인 혐오 정서가 퍼지게 된 데는 정치인과 대중매체가 한 몫 했다. 모두 알다시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중국인, 더 나아가 아시아인을 희생양으로 몰았다. 몰상식한 언론 대중매체도 '중국 코로나바이러스: 황색 경보'(프랑스 지역 일간지 <르 쿠리에 피카르>), '판다모니엄'(오스트레일리아 일간지 <헤럴드 선>), 'made in china'(독일 주간지 <슈피겔>)......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 인종차별을 부추겼다. 이토록 뿌리깊은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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