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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호 Jun 20. 2023

네가 떠오르는 계절, 또 여름이다.

망할 놈의 도윤도 <1차원이 되고 싶어>

또 여름이다. 꿉꿉한 공기와 알록달록한 길거리, 서글픈 매미 울음소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금은 끈적끈적해졌다. 시계 초침이 막 여름의 시작을 알릴 때가 되면 항상 기분이 묘하다. 며칠 동안은 심지어 적적하다. 그 시절 우리의 여름이 떠올라서다.


여름의 문턱에 서면 나는 항상 붓질을 한다. 간신히 윤곽과 형체만 남겨둔 채 봉인해 둔 흐릿한 도화지에 우리의 여름을 그린다. 퍼붓는 장대비를 그대로 받으며 잔디구장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어둑한 곳에서 속삭였던 이야기들을, 있는 힘껏 껴안은 채 나눴던 온기를 말이다. 한번 떠오른 기억은 오랫동안 나를 끌어안는다. 그때의 너처럼.


그림을 다 그리면 항상 궁금해진다. 그 시절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 사랑과 질투, 혐오, 두려움 그리고 혼란으로 점철된 우리는 뭐였을까. 그해 여름은 도대체 뭐였을까.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 무늬는 극 중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직도 그렇게 그리워? 그리워서 미치겠어?"


그립지만 절대 다시 돌아갈 수도 없기에 오히려 소중해지는 것이 있다. 찬란하고 순수했던 그때의 우리다. 그래서 또 나는 이번 여름 문턱에 서서 너를 삼킨다.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면 늘 그랬듯 너를 생각할 것이다. 망할 놈의 도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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