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들 편할 대로만 생각하고 지 입장밖에 모르죠!"
" 아니, 그게 아니고 그 사람들은 또... 좀... 불편한 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지 하고 싶은 것만 하잖아요. 선생님은 그게 힘든데 정확하게 말 안 하니까 계속 반복되는 거고"
사실 브런치는 심리상담 교수님의 권유로 시작하였다. 누구에게든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해 보라고. 욕도 잘하면 약이 된다고. 상담이 시작되면 얼마 안 가서 나는 누군가를 변호하고 있었고 그 누군가는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이다. 오랜 세월 굳어진 관계는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 나도 모두에게 편한 사람은 아닌데... 주변 관계에서는 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누가 지극히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향한 작은 바람들이 축적되어서 내가 감당하면서 살아내야 하는 위치는 내 키를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나의 작은 그릇으로는 벅찬 상황이 여러 곳에서 터졌다.
제일 처음은 시댁 사람들과의 문제였다. 큰 동서는 대구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하며 각 학교에 납품을 하는 여장부였다. 나는 같은 며느리 처지이기도 했고 큰 동서를 성격상 은근히 믿고 따랐다. 그런데, 큰 동서와 아주버님과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에 시댁과 아무래도 설왕설래가 있을 때, 내가 큰 동서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큰 시누이에게 미움을 받게 된 것 같다. 10살 정도 많은 큰 시누는 감정적이고 피해의식까지 있다. 맘씨 좋은 이웃 아줌마이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막무가내이기도 하다. 그 당시, 큰 시누가 큰 동서에게 한 말들이 네게도 하는 말 같아서... 지울 수 없는 서운함을 남겼고 용서는 했지만 다시 정이 들기는 어려워졌다. 그 일이 있고 2년 후, 15년 전 즈음 큰 동서가 담낭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11년 전, 남편이 위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 후 잘 회복하였다. 그런데 큰 시누는 어버이날이라고 모인 가족 모임에서 남편의 위암이 내가 식사를 잘 못 챙겨줘서 생긴 일이라는 식으로 비난을 했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도 거들었다. 나는 이건 뭔가...? 싶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뭘까? 큰 동서의 병은 큰 동서 잘못이고 남편의 병은 아내인 내 탓이라고. 시댁 식구 누구도 내게 걱정이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힘들고 맘이 아픈 사람이었을 텐데...
큰 시누의 부추김에 덩달아 동조하던 시어머니는 내게 '그때 잘 못 생각했다' 사과하시고, 6개월 후에 갑자기 급성 치매로 돌아가셨다. 시댁 형제들은 원래 사이가 좋기는 했지만,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더 좋아졌다. 나는 재산 상속을 포기했고 모두가 더 행복해졌다. 친정 엄마가 외할머니 재산 상속을 포기하면서 모든 형제 우애가 더 좋아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큰 시누는 가족 모임에 나와서 '이제 다 잊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관용을 베푸는 듯한 말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잊어야겠지.
그렇지요... 큰 시누는 부모님들이 남동생들 대학공부시킬 것 생각해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했다고 한다. 시댁이 없어서 친정을 내 집처럼 생각하며 살았으며, 동생들을 끔찍이 생각해서 어려운 일을 다 해결해주고 싶어 했고, 자기가 친정에 기여한 바가 많아서 재산도 더 받아야 한다며 가져갔다. 생각해보면 다 이해가 가는데... 어디서 욕을 해야 할까요.
굳이 하지 않아야 할 '누구 탓'을 하고, 좋은 쌀로 밥 해먹이라고 쌀 한 자루를 병실로 배달시켜서 퇴원할 때 들고 가게 하며, 퇴원 후 1년 넘도록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무도 연락 없고, 다 낫고 나니까 다시 가족 모임에서 계산만 시키는 @@님들! 이제 벌써 30년 째인데, 고맙다는 말은 못 하더라도 서로 기본적인 배려는 좀 하면서 살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마음이 쓰여... 혹시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실까 싶어서 제 경우를 옮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