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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깨끗함과 더러움의 끝없는 수레바퀴

세탁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며칠 전 부터 편치 않았다.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양의 빨랫감을 바라보는 건 

숙제를 하기 귀찮아서 놀고 있지만 마음은 편치 않은 아이의 마음 처럼

기저에 숨어있는 압박감으로 나를 서서히 옥죄어 온다.


비슷한 경우로는 

차에 기름이 절반보다 조금 낮은 상태라던가

늘 부엌에서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식용유나 간장, 주방세제 등이 떨어져 갈 때 서서히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그냥 차에 기름을 넣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내 몸도 무거운데 기름을 가득 넣어 연비가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냥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면 되는 것 아닌가?

반드시 언젠가는 업계 2위나 3위 업체에서 식용유나 간장을 1+1으로 저렴하게 판매할 지도 모른다.


빨래도 양과 상관없이 자주 세탁기를 돌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빨래의 경우는 조금 다른 공식이 적용된다.


내 눈에 보이는 저 더럽혀진 옷들이 

분명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구석구석 청소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한 번의 선택 이후에 버림받은 옷이나 양말이 

집 안의 어딘가에서 쌓이는 먼지와 함께 숨어있다.


우선

방 안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옷들은 일괄적으로 세탁기로 직행한다.

한 번 더 입을 수 있는지? 

언제 잠깐 입고 벗어놓은 건지? 

당사자에게 묻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일 수 있다.


청소를 하다 보면 이해가 안되는 곳에서 빨랫감이 출몰하기도 하는데 

왜 더러운 양말을 침대와 벽 사이에 구겨넣는지?

왜 입었던 옷들이 책상과 벽 사이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하면 그만이다.


온 집안을 깨끗하게 하고 나면 

비로소 원하는 만큼의 빨랫감이 모이게 된다.


이제 나는 

빨래를 하고 건조대에 널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빨래는 눈에 보이는 전시효과가 크기 때문에 

집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는 무언의 표시가 된다. 


세제와 유연제를 듬뿍 넣고 버튼을 누른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내가 손으로 하는 것 만큼 기쁘다.

이 집안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내 손으로 처리했다는 보람이 있다.


그런데

건들건들 

세탁기가 미세하게 앞 뒤로 흔들린다. 


집이 기울었나?


수평이 맞지 않은 채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세탁기가 안쓰럽다.


이제는 본래의 용도를 상실한. 

자원 낭비의 표상일지도 모르는 신문지를 가져와 

여러 번 접은 다음 한 쪽 모서리에 괴어 놓는다. 

훨씬 안정감 있게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내가 집에 있기에 이런 것들이 해결 가능하다는 나름의 역할론을 세워 본다.


세탁기의 벨이 울릴 때 까지 시간이 남는다.

열심히 청소하고 빨래를 모으느라 고생한 내 몸을 씻어야 할 차례가 왔다. 


요즘은

거의 매일 새벽 4시 언저리에 잠에서 깨어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다시 잠든다. 

중간에 한 번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조금은 덜 더럽다는 안정감을 얻기도 한다. 

밤 새 얼굴에서 생기는 피지들

밤 새 입안에서 자라는 박테리아들을 중간에 한 번 걸러준다는 만족감이 있다.

잠을 설치기는 하지만

남는 게 시간이니 큰 영향이 없다.


그러나

샤워를 하러 들어갈 때 

나는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세탁기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해야 하는데 제가수신을 한 내 잘못은 

벌써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보통과는 다른 느낌이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탁기에 같이 들어갈 자격이 있는 건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누가 보겠냐 싶어 며칠 째 집에서 입고 있는 내 옷.

목이 늘어나 매우 후줄근하며 

가슴에 프린트 된 글자는 너덜너덜 벗겨져 해석이 불가능하고

양 손으로 살짝 벌리면 옆구리 쪽에 작은 구멍이 확대되어 보이는 내 옷.


생각해보면

내가 제일 더럽다.


설거지를 하고 물에 젖은 손을 앞치마 처럼 닦거나

아랫단을 들어 얼굴에 난 땀을 훔치는 

걸레같은(?) 편안함을 주는 내 옷.


생각해보면

내가 제일 문제였다.

빨랫감을 바닥에 깔아놓는 것에 대한 불만 이전에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오늘 또 얻었다.


아무리 집에 있어도 

이런 옷을 입고 있으면 

나에게 행운이란 게 올까 싶다.


빨래를 다 했지만 

곧바로 다음 빨래가 대기하는 모습이 싫기도 하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위해 

항상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몇가지 옷을 정리하고 

오늘은 조금 멀쩡한 옷을 입고 가족들을 기다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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