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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주부가 된다 Part. 1

ep3. 절망은 NO!.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된다. 정당하게 밥을 먹자.

 공중파에서 '위기의 부부'라는 15분 분량의 리얼리티 코너를 연출했던 때가 있었다.

밝고, 화려하고,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지향했던 나는 

제목부터 별로인 이것을 절대적으로 원치 않았음에도 

뛰어난 실력으로 인해 자꾸만 팀 내 에이스가 되어가는 바람에 

결국, 70분 분량의 아침 생방송 전체 프로그램 속에서 

가장 비중 있는 꼭지를 맡게 된 것이다. 물론, 철저히 개인적 의견이다.


수많은 사연을 가진 위기의 부부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설루션(solution)하는, 

어떻게 보면 이혼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에 

작은 희망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전국에 있는 희망이 없이 우울한 부부들을 촬영하곤 했다.


그중 한 부부는 

실직 이후에 특별한 대책 없이 집안에서 뭉개고 있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매일같이 압박하고 쪼아대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낮과 밤이 바뀐 남편, 방안에 굴러다니는 술병들, 배려와 존중이 사라진 부부 싸움.

칼로 물 베기가 아닌, 말로 하는 칼부림의 현장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건 나로서도 엄청난 고욕이었다. 

화면 가득 채워지는 희뿌연 모자이크, 몇 초가 멀다 하고 '삐-'처리되는 오디오. 


슬픈 노래는 듣지도 않고, 질질 짜는 드라마는 보지도 않는 아버지가 생각나서

당시에는 이런 프로그램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참 어려웠다.

여담이지만, 나 역시도 어린 시절 가정불화의 희생양이었고, 

'세상에 스위트 홈이란 없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고 다닌 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 말하길 주저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좋은 것만 봐도 모자란 인생에 매주 위기의 부부를 눈앞에서 보고, 밤을 새우며 편집하고 있노라면 

개인적으로도 극도의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퇴근이 없는 남편이자 아빠는 가정 자체가 위기다.


은퇴 후 경제적 문제와 대책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갈등.

앞서 언급한 부부의 결말은 다양한 심리치료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남편에게 희망 일자리를 제공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게 되었다. 


방송 이후

잘나가던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얇아진 지갑 대신 긍정을 채워가며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방송 프로그램의 PD로서, 아니면 힘든 순간 함께했던 인연으로 인해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조금씩 아픔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듣게 된다면 

잠시나마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한 이야기지만 세간의 화제가 되거나 시청률이 높게 나오지 않는 한 

방송에서 '그 후'를 촬영하는 일은 없다. 

개인적인 연락도 하기가 힘들었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핀잔을 듣거나, 오히려 상황이 악화된 경우라면 

부부갈등의 또 다른 원흉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회피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 만성피로에 시달렸기에 개인적으로 그들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다음주, 다다음 주에 등장할 또 다른 위기의 부부들이 이미 심장을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우리 부부도 힘들었다.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이자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는 

방송이 끝날 무렵, 익숙한 엔딩 음악과 함께 허연 잔상을 남기며 

눈에 피로감을 줄 정도로 재빨리 지나가는 제작진의 수많은 이름들 중 하나로 생사가 확인될 뿐이었다.


게다가 퇴근할 여유가 있는 날에 동료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일한다고 집에 안 들어와. 일 안 하면 술 먹는다고 늦게 들어와. 

애들은 안중에도 없어. 결혼할 자격도 없는 인간이었어. 

참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나 즐겁자고 버티며 술집에 앉아있던 패기는 망가진 몸과 함께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이제 그런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빠와 놀 수 있으며, 아내가 퇴근하면 웃으며 문을 열어주는 남편이 되었다.

일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녔던 인생의 역마살은 그렇게 다 소진된 듯 보였고

적어도 며칠 정도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며, 휴가를 즐기는 기분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서히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의 모습은 바로 나였다.

감기에 걸리기 전, 침을 삼키면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는 인후처럼

월요병에 걸리기 전, 일요일 아침부터 점점 묵직하게 치밀어 오르는 스트레스 덩어리처럼

뭔가 갑갑하고 암울한 미래가 몸속에 살며시 들어앉아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빨리 위기감을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사실

앞서 말한 '위기의 부부'와 같은 에피소드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현실과 비슷한 분위기의 방송이 제법 있다.

은퇴한 운동선수가 집에서 생활하는 것에 적응을 못하고 

가족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 모습을 웃으라고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고,

정년퇴임 후 무료한 인생을 살아가는 노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제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제와 상관없이 매주 같은 결론을 짓는 듯한 착각을 주는 시사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환경이 바뀌어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중년의 아저씨들.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이라곤 은퇴한 야구선수처럼 돈을 벌어놓지 못했다는 것과 

프리랜서로 일해왔기에 정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으며, 당연히 퇴직금 따위는 없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아빠 힘내라고 언제나 응원하는 아이들은 이제껏 밖으로 돌기만 한 아빠와 

서먹한 관계가 아닌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비록 경제적 능력이 사라져 

지금 이 순간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빠의 자격지심을 어린 강아지들은 알 리가 없겠지만. 

그리고,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 아내. 

특히나 남편의 갑작스러운 은퇴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 앞에서 특별한 코멘트 없이 

묵묵히 나를 지지해 주는 모습은 한없이 고마우면서 한없이 부담스럽다.

편안함과 동시에 적당한 긴장감을 올려주는 현명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TV 속 사람들과의 비교는 일정 부분 공감되는 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 자존감 부족과 우울감과 같은 전혀 건설적이지 못한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된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세 번 정도 빠르게 흔들어 털어버리지만 나오는 한숨까진 막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의 고통은 늘 타인과의 비교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유명한 말이 

세계 1위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와닿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또 다른 변환기.

집에 빨간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던 것을 보고 자수성가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었던 20대처럼.

지금의 이 상황 역시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며 묘안이 필요했다. 

대책은 없지만 뭔가를 '짠'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대책이 없다고 매일을 '짠'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절망은 NO!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된다. 

정당하게 밥을 먹자.

이제 나는 인생 후반 '신이 주신 임무'를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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